[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영어 발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영어 발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04.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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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영어에 ‘faux’라는 낱말이 있다. 요즘 가상(假像) 옥외광고라고 하는 ‘FOOH’의 ‘f’의 원단어로 자주 보인다. ‘OOH’는 ‘out-of-home’에서 왔고, 맨 앞의 ‘F’는 ‘fake’라고 더 많이 쓰는 것 같은데, 가끔 ‘faux’를 줄인 거라고 쓰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faux’는 철자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프랑스어에서 왔다. 얄팍한 프랑스어 지식으로 ‘에프(f)’ 발음의 ‘ㅍ’으로 ‘포’ 또는 ‘푀’ 또는 그 중간 정도로 읽었는데, 대충 맞는 것 같다. 어떤 친구들은 ‘포욱스’ 식으로 철자 그대로 발음하기도 한다. 사실 알아들을 자세가 되어 있는 상대에게 발음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말하는 내용이 문맥과 어우러진다면 발음이 좀 이상해도 다 알아 듣는다.

미국에서 ‘오렌지 달라’고 하니까 아무도 못 알아들었다며, ‘오린지’라고 해야 한다고 모 대학 총장을 오래 지내고,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내고, 국무총리까지 바라보았던 인사가 말했던 적이 있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이가, 그 말에 동의하며 자신도 미국의 맥도날드에서 ‘치즈버거’를 한국식으로 발음하며 시켰더니 종업원이 못 알아들어, 몇 차례 되풀이하여 소리치다가 메뉴 중 치즈버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그때야 ‘오, 치-즈 버어거’식의 원어 발음으로 하며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자 ‘코카콜라’를 달라고 했는데, 못 알아듣다가 옆줄에서 ‘코크(Coke)’라고 하는 걸 보고 그를 따라 시키니 겨우 통했다고 옆의 사람이 말했다.

전직 총장님이 미국의 어느 장소에서 대체 ‘오렌지’를 달라고 했나 궁금했다. 다른 대학교 탐방을 갔다가 도서관에서 갑자기 오렌지를 달라고 했다면 아무도 못 알아들어도 당연하다. 그 정도 양식은 있고 유학하며 생활도 하셨으니 과일 가게나 오렌지주스를 포함한 음료를 파는 곳에서 그랬는데, ‘말하는 거 듣기는 했는데 뭔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중국어로 ‘팅부뚱(聽不懂)’의 반응을 받았다면 듣는 이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맥도날드에서 파는 버거가 얼마나 많다고, 그리고 보통 ‘코크’라고 하지만 ‘코카콜라’라고 하는 미국 친구들도 간혹 있고, 다 알아듣는다. 그런 말을 못 알아듣겠다고 하는 건, 자신이 원하는 식으로 말하기를 강요하며, 일부러 ‘힘든 시간(hard time)’을 주는 못된 행위이다. 그와 같은 행위의 저변에는 대개 인종차별적 태도가 깔려 있다. 인종차별의 기저에 보통 깔려 있기 마련인, 상대가 자기보다 열등하다거나 힘이 약하다고 여기는 까닭도 있다.

인류학자로 전사자 유해감식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온 진주현 박사의 글에 이런 일화가 나온다. 부서의 디렉터가 학회 후 저녁 자리에서 간단한 스낵과 함께 맥주를 마시는 진 박사에게 무얼 마시느냐고 새삼 물었다. ‘beer(맥주)’라고 하니까 몇 차례 더 ‘뭐라고?’라며 묻더니, ‘어’ 발음이 영어에 없고, 있다고 해도 혀를 굴려서 발음해야 한다며, 그래서 진 박사가 뭐를 마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외국어로 자기 말을 쓰는 상대방을 두고, 되지도 않는 농담이나 골탕을 먹이는 식의 못된 짓거리이다.

미국에서 주재할 때 같이 일하던 현지인 동료들을 대상으로 기업 슬로건을 가지고 간이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어느 기업의 새로운 슬로건 하나를 주고 어떠냐 물어본 것이다. 그냥 전자제품 만드는 기업이라고만 얘기했을 때는 이들이 내용과 관련된 것들을 지적했다. 예를 들면 ‘무엇을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고객이 얻는 혜택이 나타나지 않았다’ 등등의 보통 우리가 슬로건을 두고 하는 언급이었다. 그런데 그 슬로건이 일본기업이라고 얘기를 하면 영어 문법이 이상하다든지, 쓰지 않는 표현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애플이 오랫동안 썼던 슬로건인 “Think different'를 일본이나 한국기업이 썼으면 문법이 어떠니 하면서 논란이 일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마 사내의 영어깨나 하는 이들에게서 ‘different'란 형용사가 아니라 ‘differently’라는 부사형이 와야 한다는 둥 문법 따지면서 기업 내부에서 통과되지 못했을 확률이 아주 높다. 조금 점잖게 말하는 이들은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보라고 할 것이고, 미국인들은 한국 기업의 슬로건이란 소리를 들으면 바로 문법에 어긋난다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을 공산이 크다.

중국 소재 법인에 근무하는 중국인 직원들과 인터뷰한 녹취 파일을 잘 아는 친구에게 맡겨서 번역한 적이 있다. 우리 본사의 친구가 출장을 나가서 물어보고 중국 법인에 있던 주재원들이 통역을 맡았었다. 번역을 맡은 친구가 작업을 끝낸 후에, 농담조로 ‘우리 주재원들 중국어 실력이 어떠냐’라고 물으니, 모두 아주 잘한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법인장님보다는 젊은 편인 직원 주재원들이 중국어를 더 잘해. 그런데 중국인 직원들은 법인장의 성조가 틀린 중국어는 딱딱 알아듣고 대답을 하는데, 자신과 비슷한 직급의 주재원의 중국어는 성조가 훨씬 명료한데도 ‘잘 못 알아듣겠다’라고 불평을 하든지 다시 말해달라고 하는 거야.”

힘 있는 이들의 말은 알아서 해석하고, 없는 뜻까지 만들어 붙이곤 한다. 그리고 힘이 없다 싶으면 건성으로 듣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상대의 문제를 ‘내가 잘못했겠지’하는 자세는 콤플렉스의 일종이다. 이제 그런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 중국 애들보다 더 경전 한 자 한 자에 매여서 자신을 얽어매던 그런 과거를 영어로 그 대상만 바꾸어서 또다시 사람들을 혼내고 굴레를 씌우지 말자. 광고에서 더욱 마구 우리 식으로 영어 한번 맘대로 써보면 좀 그런 콤플렉스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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