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순어법의 반전과 일상을 깨는 계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순어법의 반전과 일상을 깨는 계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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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aru Mediocrity (출처 애드에이지)
Subaru Mediocrity (출처 애드에이지)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스바루(Subaru)라는 자동차 브랜드를 1980년대 미군 부대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에 처음 봤다. 50세가 넘어, 당시로써는 거의 노인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인 군무원이 자신의 큰 덩치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몸을 꾸겨 넣다시피 하며 타고 다니던 노란색 소형차였다. 스타일은 스포티함을 추구한 것 같지만 잘 빠졌다고 하기는 힘들었고, 노란 색상이 눈에는 띄었지만, 변색이나 탈색된 것처럼 보이는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의 얘기로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만 쓰려고, 한국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이에게 싼값으로 샀다고 했다. 스바루라는 브랜드에는 어울릴 법하다.

규모나 성가 면에서 스바루는 최상급의 브랜드는 아니다. 현대차 엑셀이 미국에 진출하기 전에는 품질 대비 저렴한 가격이란 부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아시아 브랜드였다. 엑셀의 미국 진출 이후에 가격 강점이 바래지고, 이후 현대차와 기아차가 품질 부분에서도 인식이 상승하면서 자동차 브랜드로서의 존재감 자체가 희미해졌다. 그래도 스바루에서 굳이 장점을 들자면 디자인에서 독특한 측면이 있다는 정도였다. 스포티한데도 둔해 보인다는 미군 군무원 아저씨가 탔을 때의 기묘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 성격이 그나마 가냘프게 지속하고 있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사라지는 듯했던 스바루는 독특한 디자인을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우기로 했고, 그것을 극적인 방법으로 부각했다. 자신이 내세우려는 디자인의 독특한 부문을 완전히 없애 버린 자동차를 만든 것이다. 회사까지도 새롭게 만들었다는 일종의 세계관을 제시했다. ‘Mediocrity', 바로 ’평범‘을 대표 브랜드로 내세웠다. 혹시라도 차량의 외형을 돋보이게 할지도 모르는 모든 디자인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여 평범한 차를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음을 힘주어 얘기했다. 2010년 말에 시작한 캠페인의 광고문구 중 하나가 그들의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는 비범(非凡)하지 않습니다. 특별할 정도로 평범한 겁니다 (We're not extraordinary. We're extra-ordinary).”

물론 스바루가 실제로 그런 기업을 만들고, 자동차를 생산하여 시장에 내놓은 것은 아니다. 농담처럼 유머를 곁들인 화제 유발 프로젝트로 반전을 염두에 두고 기획한 것이다. 그래서 디자인이 결핍된 것이 심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바루의 디자인이 돋보인다고 하는, 원래 의도된 반전을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일정 수준에서 얻을 수 있었다.

스바루의 이 'Mediocrity' '정말 평범함'이란 캠페인은 사실 히트작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나는 재미있게 보았고, 'Extraordinary ordinary' 란 카피를 보고, 무릎을 치면서 좋아하고, 친구들과 얘기할 때 가끔 써먹고는 했지만 말이다. 'Extraordinary ordinary'처럼 상반된 뜻을 가진 단어들을 합치거나 나열하는 이런 걸 모순어법(oxymoron)이라고 하며,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에 ‘모이지만 떨어지라’는 정부의 지침을 두고 여기 ‘박재항의 반전 커뮤니케이션’에 소재로 쓰기도 했다.

'Extraordinary ordinary'란 스바루의 모순어법을 이용한 광고 캠페인이 시작되기 이전, 그해 초반에 'Super normal'이란 제목을 단 책이 나왔다. 원래 주변에서 너무나 보통으로 볼 수 있고, 항상 쓰이는 것들에서 특별하고 위대한 디자인의 진리와 통찰을 짚어낸 책이었다. 그 이후는 뜻이 확대되어 일상을 영위하는 자체가 훌륭한 것이고, 그런 가운데 행복과 가치를 찾으라는 워라밸, 소확행이나 갓생 등의 트렌드로 연결되었다.

‘아닌 밤중 홍두깨’와 같았던 계엄 소동의 밤을 지낸 후 아침 동네 목욕탕에 갔다. 두 노인이 거의 미수에 그친 시도를 놀랍게도 아쉬워하며, 이전의 독재정권 때가 좋았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정권이 꽉 틀어쥐어서 시끄럽게 구는 이들이 없었고, 일만 열심히 했다면서 이렇게 모순어법 비슷하게 구사했다.

“조용하지만 활력이 있었잖아.”

그냥 그때 당신의 젊음을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한바탕 소란의 시간이 지나는 와중, ‘super’하지는 않아도 좋으니, ‘normal’의 시간이 그립기도 하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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