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광고에 고전이 있나?
[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옛 그림에는 낙관이 있다. 작가의 이름이다. 광고에 낙관이 있나? 그런 말 들어 본 적 없다. 한국에서 광고 작가의 이름이 나오게 된 것은 아마도 조선일보사가 1964년에 시작한 한국 최초의 광고상인 <조일광고상> 때부터 아닐까 한다. 일본은 우리보다 조금 앞서지만 큰 차이는 없다. 왜? 그 나라도 우리처럼 사농공상의 나라니까.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어쨌다는 말인가? 답변은 간단하다.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이 넉 자 가운데 광고는 맨 아랫자리인 "상(商)"의 도구로 되기 때문이다. 지상파 라디오, TV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종이 신문이나 인터넷 신문은 언론이다. 따라서 이 넉 자 가운데 맨 위인 "사(士)"이다. 우리나라 법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130년 전 갑오경장으로 이 신분 관계는 없어졌다. 그런가? 사농공상은 문화현상이다. 문화란 법으로 하루아침에 없애거나 바꿀 수 없다. "신판 사농공상"은 여전하다. 한국의 각종 광고단체가 거의 모두 모인 단체가 한국광고총연합회이다. 이 단체는 격월간 <ADZ>을 발행한다. 내가 하는 말은 지난 5/6월호에 잘 나와 있다. 또한 작년 9/10월 광고주협회 격월간 <KAA Journal>에 게재된 인터넷 신문 자율 공시기구에 대한 보도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물론 지난 130년 사이 한국 광고 산업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옥외광고의 변화는 눈이 부실 정도이다. 강남 삼성동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의 야경을 보면 알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각종 국내, 국제 광고제 수상작 광고에는 제작에 관여한 모든 전문가의 이름이 나온다. 작품 따라 다르나, TV 광고 같은 경우는 관련되는 스태프의 이름이 수두룩하게 나오는데 아무리 적어도 열 명은 넘는다.
광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은 한국 경제가 두 자리 성장을 한 1960년대 말 무렵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1968년 코카콜라와 뒤이어 펩시콜라가 한국 시장에 진입하면서 미국의 손꼽는 광고회사 맥캔 에릭슨과 J. 월터 톰슨의 영향이 TV 광고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코카콜라 광고를 대행하던 만보사는 동아일보사와 두산그룹의 합작인 만보사(萬報社)였고, 사장은 윤보선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며 일본 공사를 지낸 이재항 선생이었다. 합동통신사는 두산 그룹 계열이다. 두 언론사가 광고대행업에 진출했고 삼성그룹 계열 제일기획, MBC가 주동해서 창설된 연합광고, 럭키그룹의 인하우스 대행사이던 희성산업 역시 광고대행업에 참여했다. 언론사와 대기업이 광고대행업에 뛰어들자, 광고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70년대에는 주요 신문사와 방송국이 모두 광고상을 제도화했다.
70년대에 한국 "광고장이"는 "광고인"이 되었다. "장이"가 광고를 하던 시대가 끝나고 "사람"이 광고를 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지금 90대 넘었을 일본 광고인한테 들은 말인데, 해방 전에 일본에서는 "사농공상, 그리고 광고대리점"이란 말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연로한 광고인 가운데는 이 말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이 무엇을 말하는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문화란 끈덕진 사회현상이다. 휘황찬란한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의 야경은 좋지만,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우리 대한민국 사회의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케케묵은 사농공상"의 쓰레기를 걷어 내야 할 것이다.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 이야기를 하다 보니 미국과 영국의 옥외광고 책 생각이 난다. 제호는 다르지만, 내용은 100여 년 전의 옥외광고물로부터 현대까지 대표하는 옥외광고 100개를 모은 책이다.
작년 10월의 아시아광고대회(AdAsia)를 계기로 우리의 옥외광고는 이제 세계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부디 내년쯤에는 조촐한 우리의 옥외광고 책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