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젊은이들 언어를 쓰려 애쓰지 말라

2024-09-23     박재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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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자취 생활을 하던 20대 중반의 어느 인기 웹툰 작가가 오랜만에 본가로 가서 엄마가 차려준 집밥을 먹는다. 남편과 둘만 먹는 단출한 밥상만 차리다가, 자식이 왔다고 엄마가 솜씨 발휘하며 다양한 요리를 내놓았다. 작가의 아빠도 신이 나서 이것저것 먹으면서, 그중에서도 평소 먹기 힘들었던 갈비의 양쪽 뼈끝을 두 손으로 잡고 침을 튀기며 말한다.

“개존맛”

‘자주 듣던 말인데 아버지 입으로 들으니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라면서 작가는 아빠에게 묻는다.

“그런 말은 대체 어디서 배우는 거야? 무슨 뜻인지는 알아?”

아버지는 별 이상한 걸 다 묻는다는 듯, 태연하게 두 손끝으로 잡은 갈비를 입으로 가져가서 뜯으며 답한다.

“’ㅈㄴ’ 맛있다는 거잖아. 앞에 ‘개’ 붙여서.”

그리고 자기가 쓰는 게 뭐가 문제냐는 듯 말한다.

“젊은 사람들이 자주 쓰더구먼.”

작가의 아버지는 대화 상대인 자식에 맞춰서 일부러 그런 말을 썼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젊은 친구들이 하는 표현을 듣고, 재미있다 싶어서 단순하게 따라 했을 수도 있다. 어른들이 이런 젊은이들의 신조 유행어를 따라 하는 데는 보통 인정을 받으려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나름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고 그걸 따라가려 노력하며, 그래서 젊은이들이 쓰는 말도 자연스럽게 쓸 정도이니, 충분히 어울릴 자격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함이다. 그럴수록 젊은이들이 피하게 되는 게 반전이다.

베트남의 한인 성당에서 주말 초등부와 유치부 교사로 봉사하던 선생이 계신다. 아이들이 ‘귀여워’를 앞 자모만 따서 ‘ㄱㅇㅇ’라고 쓰고, 어떤 때는 그걸 비슷한 모양의 아라비아 숫자로 ‘700’이라고 쓴다는 걸 그분이 알았다. 그래서 ‘성당 꼬맹이’들에게 ‘700’이라고 썼더니 아이들이 말하더란다.

“선생님,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돼요.”

선생이 그런 표현을 애써 쓰는 걸 본 그 ‘성당 꼬맹이’ 중 하나가 ‘개웃겨’를 ‘ㄱㅇㄱ’이라 쓰고, 그걸 위의 ‘귀여워’랑 같은 식으로 ‘707’이라고도 쓴다는 걸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어른들과 있을 때나 쓰고, 자기네들 ‘꼬맹이’한테는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최근 ‘Z세대 딸에게 마케팅 카피를 맡기면 벌어지는 일’이라는 자막과 함께 880년이나 된 유서 깊은 민박집을 소개하는 영국의 한 아주머니의 틱톡 영상이 1천2백만 이상 조회 수에 2백만이 넘는 ‘좋아요’, 그리고 1만 1천 개를 훌쩍 넘는 댓글이 달리며 화제가 되었다. 단아한 옷차림에 차분한 말투의 아주머니 입에서는 요즘 영국의 젊은이들이 쓰는 속어에 가까운 단어들이 연속해서 나온다.

‘giving Zen, rizz, understood the assignment, slay, mindful, demure, brat summer, menty b’

대충 알 것 같은 단어라도 젊은 층들이, 특히 소셜 미디어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기도 한다. 아주머니가 두 번 외치는 단어인 ‘slay’란 단어 하나만 뜻을 보자. 원래 ‘kill’과 비슷하게 ‘죽이다’라는 의미이다. 우리 말에서 아주 좋은 것이나 신나는 상태 같은 걸 가리킬 때 ‘죽이네’라고 쓰기도 하듯, 이것도 ‘짱이야’, ‘끝내줘’ 정도로 쓴다고 보면 되겠다. 이 틱톡 영상은 억지로 젊은이들의 어휘를 쓰는 데 대한 반감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쓰는 어른의 무지와 반전에 무게를 두어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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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홍보원에서 발행하는 국방일보에 2020년 한 해 동안 ‘MZ세대를 말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매주, 한 해 통틀어 50회를 연재했다. 그 중 ‘신조어로 짚어보는 MZ세대 트렌드’란 글을 내며 이렇게 마무리했다.

‘세대의 흐름을 알기 위해 기성세대에서 신조어들을 알 필요는 있다. 그러나 서로 어색해하면서 꼭 써야만 할 이유는 없다. 혹시(hoxy)나 해서.’

‘혹시’를 알파벳으로 ‘hoxy’로 쓰는 게 당시 유행이었다. 그걸 일러스트 맡은 친구가 대문 그림에 ‘hoxi’라고 표기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흉내 내다가 낭패를 봤다. 아니, 일부러 그렇게 반전의 교훈을 주려고 했던 것인가?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서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