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AI도 킷캣 휴식이 필요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미스터 봉도 왔으니, 잠깐 커피 브레이크 합시다.”
중학생 때 만난 책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란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1960년대에는 일간지의 워싱턴 특파원, 1970년대에는 TV 뉴스프로그램의 앵커이자 해설자, 1980년대에는 5공화국 여당의 국회의원, 1990년대에는 라디오 진행자, 2000년대 이후에는 천주교 신도단체 회장 등 언론인, 정치인으로 유명했던 봉두완이란 인물이 자신이 진행했던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TV 프로그램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쓴 책이었다. 좌충우돌로 거침없이 현장을 누볐다는 자화자찬이 가득한 책이었다. 그 현장의 하나로 1970년대에 외무부 공관장 회의가 열리고 있던 마닐라의 어느 호텔 회의실에 불쑥 들어가자 ‘노련한 외교관’이었던 당시 외무부 장관이 저렇게 말하며 서둘러, 그러나 자연스럽게 회의를 중단시켰다고 한다.
아는 영어 단어도 별로 없고, 그나마 영한사전의 단어 풀이에 처음 나온 뜻만 ‘한 단어 한뜻’으로 외우던 그 시절에 ‘브레이크’는 당시 인기가 많았던 복싱에서 심판이 클린치했을 때 떨어지라고 할 때 쓰는 말에, 동사로는 ‘부수다’ 정도만 알았다. 커피 브레이크라니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책을 읽어가면서 겨우 브레이크에 ‘휴식’이란 뜻이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사실 지금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그 언저리에서 뜻을 말하고, 자동차를 들어서 멈춤과 연결하는 정도이다. 이런 ‘브레이크break’를 자신의 단어로 소유하다시피 한 브랜드가 있다. 바로 초콜릿으로 유명한 킷캣(Kit Kat)이다
킷캣의 ‘브레이크’ 역시 한 가지 뜻으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중학교 시절에 내가 알던 ‘부러뜨리다’와 ‘휴식’의 두 가지로 다 쓰인다. 먼저 킷캣을 먹을 때 막대기를 이어 놓은 것 같은 초콜릿을 딱딱 하나씩 ‘부러뜨린다’가 해당한다. 봉지를 뜯는 것부터 브레이크라 하는 이들도 있다. 부러뜨리며 먹는 초콜릿으로 각인되다 보니, 소형의 막대 하나 모양도 중간에 부러뜨릴 수 있는 홈을 파서 몇 토막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그런 킷캣을 일을 하거나 공부하다가 휴식, 곧 브레이크 시간에 먹으라고 한다. 소비 상황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서 슬로건인 ‘Have a break, Have a KitKat’이라는 슬로건이 나왔다.
일본 여행에서 벚꽃이나 녹차 등 일본이 나름 특산물 비슷하게 내놓는 것들이 포장에 그려진 킷캣 초콜릿을 사 오는 이들이 꽤 있다. 공항은 물론이고 시내 편의점에서도 킷캣 매대가 따로 마련이 되어 있는 곳이 많을 정도로 킷캣 자체가 일본의 특산물이 되었다. 일본에서의 킷캣은 브레이크와는 거리가 있다. 곧 일본인은 휴식을 취하지 않고, 휴식이란 걸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던 킷캣이 일본만의 특수성을 반영해서 지금의 ‘킷캣 왕국 일본’을 만든 유래는 나중에 여기에서 따로 다루겠다.
‘Have a break, Have a KitKat’라는 킷캣 슬로건은 1957년에 만들어졌고 광고는 1958년에 론칭됐다. 슬로건이 조금만 오래되었다 싶으면, 시대 상황이 바뀌었다며 슬로건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킷캣은 첨단 AI 시대에 자신들이 70년 가까이 쓰고 있는 슬로건이 어떻게 적응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즉 AI에도 킷캣이 주창하는 ‘브레이크’, 곧 휴식이 필요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무작정 무엇을 말하라는 식으로 묻지 말고 먼저 휴식을 취하도록 한 다음에 물어보라, ‘Have a Break, and then’이란 말을 먼저 프롬프트에 치고 그다음에 자신의 질문을 AI에 던지라는 것이다.
AI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배려하며 능력을 끌어올려, 힙하면서도 자상하고 재미있는 킷캣만의 브랜드 자산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 구글 리서치의 딥마인드(DeepMind)의 자료까지 뒷받침하여 믿음과 웃음을 동시에 안겨주며 좋은 의미의 브레이크를 보는 이들에게도 안겨 주며, 자연스럽게 브레이크 시키며 먹을 킷캣을 찾게 했다. 원래의 슬로건을 살짝 비틀어 이 시대에 맞게 내놓았다. ‘Have a AI break, Have a KitKat’
‘AI도 휴식이 필요하다.’ 기계는 24시간 일 년 내내 돌려도 괜찮다는 무자비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내면서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공포를 조성하는 소리가 역시 크게 울리는 지금이다. 그런 가운데 AI를 배려하며, 그래서 인간의 필요성과 우월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반전을 킷캣이 멋지게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부드러운 ‘break through’였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