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Japan] 지방 활성화 현장을 가다 (Part I): 가리비 껍질를 친환경 헬멧으로

2025-01-14     양경렬 칼럼니스트

일본 홋카이도 최북단에 ‘사루후츠촌 (猿払村)’이라고 하는 조그만 마을이 있다. 인구 2,677명의 조그마한 마을로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과소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가리비가 잡히고 일본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시골 마을로 유명하다. 하지만 가리비가 많이 잡히는 만큼 약 4만 톤의 폐기된 가리비 껍질이 쌓여 있어서 환경에 대한 큰 문제를 껴안고 있다.

사루후츠 마을에서 1,700킬로 이상 떨어진 오사카에 ‘고시(甲子) 화학공업’이라고 하는 플라스틱 가공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조그만 회사가 있다. 거리도 멀고 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시골 마을과 지방의 중소기업이 손을 잡고 가리비 껍질은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한다. 고시화학이 지금까지 축적해 온 에코 플라스틱 제조 기술을 활용했다. 제품 콘셉트부터 디자인까지 TBWA 하쿠호도라고 하는 광고회사와 협업을 하면서 가리비 껍질을 폐기물이 아닌 새로운 자원으로 바꾸는 데 도전했다. 이에는 최첨단 바이오 플라스틱 연구 지식을 보유한 오사카 대학의 ‘우야마 히로시(宇山浩)’ 교수도 참가하였다. 그 결과 100% 신품 플라스틱 소재와 비교해서 대폭적인 CO₂ 절감을 실현하면서도, 대리석과 같은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겸비한 신소재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신소재를 활용해서 탄생한 것이 ‘호타멧(HOTAMET)’라고 불리는 새로운 헬멧이다. ‘호타’는 가리비라는 뜻의 일본어 ‘호타테’에서 ‘멧’은 ‘헬멧’에서 각각 가져온 음절을 합성하여 만든 헬멧의 새로운 이름이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온 가리비 껍질이, 이제 사람과 지구를 지키기 위해 새롭게 태어났다. 기존의 플라스틱 헬멧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36% 감소하였고 강도는 33% 늘었다. 사루후츠촌 내에서는 약 270명의 어부가 어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기존의 플라스틱 헬멧을 대신해서 호타멧을 착용한다. 또한, 방재용품으로의 비축, 일반 판매, 고향세 기부 답례품으로의 도입 등을 통해, 전국으로 보급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광고회사가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 관여한 점에서 광고업계에서도 관심을 끌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헬스 부문 광고제인 ‘클리오 헬스 어워즈 2023 (Clio Health Awards 2023)’에서 최고상인 그랜드 상과 골드 상을 받았다.

(※ 영어 프로모션 비디오는 ‘HOTAMET’ 대신 ‘SHELLMET’라는 제품명을 사용하고 있다.)

 

직원 16명의 작은 지방 중소기업에서 탄생한 대히트 제품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기업은 종업원 16명, 자본금 천만 엔(1억 원 정도), 매출 3억 엔 (30억 원 정도)되는 1969년에 설립된 지방의 조그마한 중소기업이다. 플라스틱 가공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고시 화학은 그동안 오피스 가구와 음료 기기의 부품을 대형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생산, 납품해 왔다. 3대째에 해당하는 후계자가 새로운 제품 개발에 성공하면서 하청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자사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모델로 전환을 시도하였다. 하도급 중심의 비즈니스만으로는 앞으로 30년 동안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사업 승계를 받은 젊은 후계자의 위기감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 정신에서 탄생한 성과이다. 미세 플라스틱 문제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처리하기 어려운 폐기물을 활용해서 플라스틱을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을 SNS에 발신한 결과, 홋카이도의 가리비 껍질에 대한 정보를 받았던 것이 이번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사업 승계 대책

일본 중소기업청 2021년 판 중소기업 백서에 따르면, 전국 기업 수 421만 개 중에서 중소기업이 419.8만 개사로 전체의 99.7%를 차지하며 대기업 수는 약1.2만 개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은 전체 고용의 70%를 차지한다. 이처럼 중소기업은 일본의 경제, 생활, 고용을 지탱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제조업의 경우, 자본금 3억 엔 이하 또는 종업원 300명 이하의 회사가 중소기업에 해당하는데 도심부보다는 지방에 많이 존재한다.

현재 일본은 중소기업의 대폐업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말미암은 인력 부족을 비롯한 다양한 요인으로 많은 기업이 후계자를 찾지 못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음에도 문을 닫는 경우가 속출한다. 후계자 문제를 안고 있는 기업이 증가하는 가운데, 혈연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폭넓게 후계자를 모집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전체적으로 친족 내 승계 비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대신 직원이나 M&A를 통한 제삼자에게 사업을 양도하는 경영자가 늘고 있다. M&A를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의 인수 전략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지만, 현재 일본은 중소기업이나 개인 사업에서도 M&A를 통한 사업 양도와 인수가 중개업체를 통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호타멧’의 의미를 재조명: 가업을 이어받은 후계자들의 새로운 활로

고시 화학도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어떠한 운명에 처할 지 불분명하다. 젊은 후계자의 도전 정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사업을 지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99% 이상이 중소기업인 일본에서 스타트업이나 대학 연구자들이 1%에 불과한 대기업과의 협력만을 고려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이 많이 존재하고, 벤처와 다르게 그곳에는 제조 현장도 갖춰져 있다. 일본은 딥테크 (Deep Tech) 분야의 학문적인 연구 자원도 풍부하다고 평가된다. 벤처 정신을 가진 열정적인 지역의 후계자 리더가 중심이 되어, 같은 뜻을 가진 스타트업과 연구자들이 장벽을 넘어서 평등하게 교류하며 사업화를 추진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그런 후계자 벤처들이 각 지역에서 점차 생겨나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비장의 카드가 될 수 있다.

"딥테크"란 사회 문제를 해결하여 우리의 삶과 사회에 큰 영향을 주는 과학적 발견이나 혁신적인 기술을 뜻한다. 환경 변화가 심한 가운데, 가업을 이어받을 중소기업의 후계자들은 자사의 기술을 바탕으로 대학이나 스타트업과 협력하여 딥테크를 통해 사회 문제 해결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들 젊은 후계자들의 원동력은 잘못하면 대대로 이어온 회사를 자기 세대에서 망칠지도 모른다는 강한 "위기감"이다. 이러한 위기감이 때로는 혁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제로 상태에서 시작하는 벤처나 스타트업은 제조 노하우가 없고, 사회적 구현을 위한 현장도 없다. 하지만 지방 중소기업의 후계자에게는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제조 현장과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특정 분야에서의 기술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경영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도전에 착수할 수 있다. 지방 활성화는 지역에 기반을 둔 중소기업의 제조력에 새로운 기술, 즉 딥테크를 접목하는데 해결책이 있다.

‘호타멧’은 중소기업, 시골 마을, 대학의 연구자 그리고 광고회사 간의 협업으로 완성된 조그마한 프로젝트이지만 의미는 크다.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은 일본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중소기업 특히 지방 도시의 활성화 차원에서 시사점을 제공한다. 또한 사회 전체의 고령화에 따라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가 사회 주요 현안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일본 중소기업의 대응 사례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마케팅이 기업이나 제품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광의의 개념을 고려했을 때 매우 의미 있는 마케팅 성공 케이스이다.

 


양경렬 나고야 상과대학(Nagoya University of Commerce and Business)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