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Japan] 스탠리 텀블러와 커뮤니티의 파워

2025-01-21     양경렬 칼럼니스트

스탠리 텀블러(Stanley Tumbler)라고 들어봤나요? 우리나라에서는 화재로 전소된 기아 자동차 차 안에서 유일하게 멀쩡하게 남은 스탠리 텀블러의 영상물이 TV에 소개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차량 내부까지 처참하게 녹아내린 상태였지만 스탠리 텀블러는 약간의 그을음만 있을 뿐이었고, 심지어 텀블러 안에 얼음도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스탠리 텀블러는 물리학자인 윌리엄 스탠리(William Stanley)가 1913년에 강철 진공 밀폐 병을 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튼튼하고 오랫동안 뜨겁게 또는 차갑게 유지할 수 있는 보온병을 개발하였다. 손잡이가 달린 것이 특징이고 음료를 5~7시간 동안 따뜻하게 유지하고 11시간 동안 차갑게 보관할 수 있다. 1920년대에는 뉴욕의 높은 빌딩 건설 현장에서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기 힘든 건축 노동자를 위해 따뜻한 식사를 담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면서 100년 넘도록 장거리 자동차 여행, 캠핑이나 하이킹 같은 야외 활동에 어울리는 제품이었다.

그런데 2020년경부터 큰 변화가 생긴다. 미국에서 ‘스탠리(Stanley)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해당 제품을 판매하는 대형 마트 앞에는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기 전에 줄을 서는 것)'을 위한 줄이 밤새 이어졌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품절이 되자, 온라인상에서 4배 인상된 고가에 제품이 거래되기도 했다. 틱톡(Tiktok)에서는 스탠리 텀블러 해시태그가 누적 조회수 9억 뷰를 넘어섰다. 젊은 층에서의 핫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면서 Z세대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기까지 하였다.

제품 자체는 바뀌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먼저 구매 고객이 바뀌었다. 스탠리 텀블러는 100년 이상 노동자와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된 고객이었는데 타깃 고객을 과감하게 여성으로 변경하였다. 여성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제품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빠르게 이들을 타깃으로 한 제품 라인을 출시한 것이 먹힌 것이다. 여성들이 여성들에게 추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음은 용도의 확대를 들 수 있다. 단순히 야외에서만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리포지셔닝하였다. 집과 부엌 등 가정에서만 아니라 매일 외출할 때 사용하는 제품으로 여성들의 옷차림과도 잘 어울리는 패션 제품으로 변화시켰다. 원래 튼튼하고 볼드한 외형의 블랙과 카키색 등 밀리터리한 디자인으로 주로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여성​ 소비자 니즈를 반영하여 다양한 파스텔톤 컬러의 제품들을 출시하면서 100가지가 넘는 색상을 선보인다. 이렇게 색상 전략까지 변경하면서 단순히 실용적인 아이템이었던 것을 패션 아이템으로 변모시켰다.

다양한

그런데 타깃과 용도만 바꾼다고 소비자들로부터 이런 엄청난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단기간에 인기몰이하게 된 진짜 이유로는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커뮤니티 마케팅이 있다. 이 모든 시작은 제품을 써보고 제품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하는 열렬 팬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지난 몇 년간 틱톡, 인스타그램 등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열정적인 팬덤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들 대부분 커뮤니티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생성된 커뮤니티이다. 대부분의 동영상과 콘텐츠는 UGC(User Generated Content, 사용자 생성 콘텐츠)이다. 스탠리 측 또한 인플루언서들과의 협업에 의한 커뮤니티 활성화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소비자 행동에 대한 이해, 소셜 미디어 활용, 변화와 혁신에 바탕을 둔 커뮤니티 마케팅을 진행한 결과 리포지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스탠리 텀블러는 단순한 음료 용기를 넘어 팬들 사이에서 커뮤니티의 상징이 되었다. 제품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사람들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제품을 소유하는 것이 커뮤니티에 속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온라인 포럼부터 지역 모임까지, 이 브랜드의 팬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유대감을 다졌다.

 

커뮤니티 구축의 예술

197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A. 사이먼(Herbert Alexander Simon)’에 따르면, 인간은 "인지의 한계"를 초과하는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개인이 완전히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개인이 아닌 조직을 통해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이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커뮤니티에 의존한다. 브랜드 측으로서도 커뮤니티를 활용하면 고객의 다양한 가치관을 효율적으로 파악하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 고객과의 연결이 강화되어 고객의 진정한 니즈를 파악할 수 있어서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자사만의 독자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업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는 기업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창출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를 "서비스 지배 논리(Service-Dominant Logic)"라고 한다. 이 이론은 2004년 ‘스티븐 보르고(Stephen Vargo)’와 ‘로버트 라슈(Robert Lusch)’에 의해서 소개되었고 모든 경제 활동 및 비즈니스 행위를 서비스 교환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상품 자체는 가치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보며 진정한 가치는 사용 과정에서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출된다. 서비스 지배 논리는 비즈니스와 마케팅 이론에서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을 나타내며 상품 중심의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서비스 중심의 관점으로 초점을 이동한다. 고객은 가치 창조 과정의 수동적 수령자가 아니라 활동적 참여자이다. 고객과 기업은 가치를 공동으로 창조하는 파트너이고 고객의 참여가 제품이나 서비스의 최종 가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고객과의 공동 창조 과정에서 커뮤니티는 고객 간 교류를 넘어 기업과의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고객의 아이디어와 피드백이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반영되며, 고객은 가치 창출 과정에 참여한다는 소속감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커뮤니티를 통해서 가치가 창출된다

텀블러가 이렇게 세상을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일부 소비자들은 스탠리 컵의 다양한 색상을 모아 컬렉션을 채우고 있으며, 새로운 색상이나 한정판이 출시될 때마다 추가 구매를 한다. 아침 커피를 위해, 운동할 때 사용하기 위해, 다양한 옷차림에 어울리게 하거나, 스티커로 꾸미기 등 다양한 용도로 구매하기도 한다. 스탠리 텀블러는 단순히 컵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한다.

이제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고객들의 자발적인 커뮤니티가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다. 단순한 목적을 가진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충성도 높은 팬층을 끌어들인다. 소셜 미디어와 이를 바탕으로 한 커뮤니티의 파워이다.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팬을 확대하라. 기존 고객에 대한 충성도를 강화하고 신규 고객을 늘려나갈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단순히 시장에 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며, 이를 실제로 반영해 시장에 제공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야 한다. 커뮤니티를 활용하면 소비자 우선 전략을 유지하며, 고객의 수요, 피드백, 그리고 인사이트를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 브랜드로 키울 수 있다.

 


양경렬 나고야 상과대학(Nagoya University of Commerce and Business)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