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문화: 학질(말라리아) 약과 학과 거북, 그리고 광고 문화

[신인섭 칼럼] 문화: 학질(말라리아) 약과 학과 거북, 그리고 광고 문화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4.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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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며칠 전 생일 축하 편지 한 장을 받았다. 뜯어 봤더니, 학과 거북 활짝 핀 꽃 몇 송이 소나무 또 대나무 한 그루 그림이 있다. 카드 발송지는 하와이였다.

곧 이유를 알았다.

카드 안쪽에는 축하 메시지 전할 지면과 오래 건강하게 잘 살라는 메시지가 인쇄된 영어 글이 있다. 카드 뒷면에는 회사 이름과 주소가 있고 밑에는 작은 영어 글씨로 작가의 이름이 있다. Jon J. Murakami. 일본인 이름이다. 2세인지 3세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녹색 바탕에 흰 글자 “LOCAL KINE CARDS"란 말이 있는데 무슨 뜻인지 몰라 사전 뒤져 보았더니 하와이 원주민이 만든 카드임을 알았다. 그림 작가 MURAKAMI는 아마 한문으로 촌상(村上)일 것이다. 하와이에 사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궁금증이 생겨서 다시 검색해 보았더니 이런 회사 이름이 생기는 현상을 Pigin(피전)  영어라고 부른단다. 즉 영어를 못하는 이민 온 사람들이 사용하는 영어라는 뜻이다. 이 언어가 2016-7년에 미국에서 사용하는 공식 영어로 인정받았고, 지금  하와이 사람들은 어엿이 사용하는 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카드는 다문화 작품이다. 제작은 오래전 태평양 어느 섬에서 온 이주민, 창작은 장수의 동물인 거북과 학을 이해하는 동양 문화권인 일본계 미국인이 했고, 이 카드를 보낸 사람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미국인이라는 것이다.

미국에는 50개 주가 있는데 1959년에 50번째 주가 된 곳이 하와이이다. 그런데 미국의 기업이 지금 외치는 낱말이 셋 있다. DEI인데 Diversity (다양) Equity (평등) Inclusion (포섭)이다. 기업에 대한 평판 척도가 이 DEI 실천 여부라 한다.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 선언은 1863년 1월 1일이다. 그러니 161년 전의 일이다. 백인이 오늘날의 미국을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기업이 외치는 말은 DEI이며 인종 간의 다양, 평등, 포섭이다. 문화란 때로는 모질고 질기고 오래가며 변화에 저항하고 나이에 따라 심한 편차가 있기도 하다. 한편, 문화는 잘 가다듬어 선한 목적으로 활용하면 엄청난 힘을 가지기도 한다.  

눈을 동양으로 돌려 보자. 1899년 6월 2일 독립신문에는 광고 요금을 체감(遞減) 요금제도로 하는 데에 대한 기사가 신문 3분의 2페이지 크기로 실렸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신문광고를 자주 많이 낼수록 광고 단가는 싸게 된다는 것이다, 상거래로서 옳은 말이다. 1899년이면 독립신문 창설자이며 한문이 아니라 한글을 써야 한다고 주시경을 고용했다는 서재필은 한국을 떠난 뒤였다. 그런데 뒤를 이은 서양 사람이 광고의 체감 요금을 제창한 독립신문 1899년 6월 2일 자(그림 참조)에는 독일상사 세창양행의 다음과 같은 광고가 있는데 일부를 고쳐 쓰면 다음과 같다.

세창양행 광고
세창양행 광고

금계랍 광고인데, 금계랍이란 학질이라 부르던 말라리아 치료 명약이었다. 두 가지 그림이 재미있다. 앞의 것은 학에 올라탄 사람이 무엇인가 들고 있다.  Edward Meyer란 세창양행 독일 회사 이름의 머리글자 E.M.을 쓴 상표이다. 오른쪽 그림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거북 위에 앉은 토끼이다. 학과 거북은 인간의 본능인 장수를 상징한다. 동양 문화의 상징인 두 동물의 그림을 회사 이름에 이용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인천의 담배공장에서 제조하는 세 브랜드의 하나인 KEY의 태극(太極) 표도 역시 동양사상과 관련된다. 이 광고는 1905년 12월 28일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게재되었다.

담배 광고
담배 광고

시대와 나라는 다르지만, 광고와 문화는 뗄 수 없으며, 광고의 적절한 사용은 매우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산업혁명 이후 동서양의 광고 발전은 판이했다. 한 마디로 동양은 사농공상(士農工商)에 갇혀 사회 계층 맨 아래인 상인의 도구로 광고를 천시했다. 아마도 동양 3개국 가운데 가장 낙후된 광고관을 가진 나라는 우리였을 것이다.  

지난 수년 사이에 갖가지 K-문화는 미국 뉴욕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떠들썩하다. 이제 K-문화/광고는 가볍게 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7월 4일에는 광고산업법 제정을 외치는 대회가 열렸다.

하와이에는 인종차별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자는 시사가 담긴 이 생일 카드나 토끼와 거북 그림을 이용한 100여 년 전의 세창양행 금계랍 광고에는 동서양의 문화가 스며 있다.  

AI가 우리 생활에 젖어드는 시대가 되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5대 광고주 가운데 하나이고 그 광고를 맡아 하는 제일기획은 글로벌 30대 광고회사 가운데 11위이고 현대/기아 계열 광고회사 이노션이 15위이다. Samsung, Hyundai, Kia, LG... 등은 태생이 한국일 뿐 이제 글로벌 이름이 되었다. 그것을 가능케 한 힘의 하나는 광고였다.  

 사농공상(士農工商) 우물 안 개구리의 눈으로 광고의 세계를 보던 시대는 지나갔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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