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10.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내외 모두 중국학 교수인 친구 부부는 둘째 이름을 '소량(小亮)'이라고 지었다. '밝다'는 뜻의 '량(亮)'은 예로부터 중국 이름에서 많이 쓰였다. 대표로 삼국지에서 왕좌에 오른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제갈량의 이름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발음도 'ㅇ' 받침으로 울림이 있고, 뜻도 좋으니 가져다 썼겠다. 그리고 중국에서 흔히 둘째나 어린 축에 붙이는 '작을 소(小)'를 앞에 붙였겠다고 처음 둘째가 태어났다며 이름을 알려줬을 때부터 생각했다. 참고로 중국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듯이, 나이가 어린 이에게 '아(阿)'를 붙이기도 한다. 이도 오래전부터 있던 관습으로 삼국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조조의 어릴 때 이름이 아만(阿瞞)이었다.

최근에 그렇게 작명해서 붙인 사연이 있음을 처의 얘기로 들어 알게 되었다. 그 부부가 둘째를 낳기 전에, 자녀까지 데리고 중국에 머무르게 된 지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지인의 딸이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인 중국의 소학(小学)에 들어갔는데, 중국 애들이 전학생이라고 놀려대고 했단다. 한국에서도 그렇고, 서구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전학해 온 애들의 텃세 비슷하게 부리는 건 세계 공통인가 보다. 그 아이에게 '너희 나라는 우리 속국이었다'라는 말에 '작은 나라에서 왔다'고 깔보는 말을 중국 아이들이 내뱉곤 했다. 게다가 그 아이가 덩치까지 작은 편이라, '작은 나라에서 와서 몸도 작구나'라고 놀려 댔다고 한다. 처음에는 당하기만 하다가 대충 중국어를 익힌 아이가 자신보고 작다고 놀리는 애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小的更漂亮(샤오더껑피아오량)!"

우리 말로 하면 '작은 것이 더 예쁘다고!' 정도 되겠다. 놀려대던 중국 아이들이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상황과 표현에 감탄해서, 친구 부부 중 남편이 아이의 이름을 '소량(小亮)'이라고 짓겠다고 공표를 했다고 한다.

'더 아름답다'는 아니지만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가 1973년에 출간한 베스트셀러의 제목을 연상시킨다. 에른스트 슈마허의 책 제목은 그에게 가르침과 영감을 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미국과 영국에서 교편을 잡았던 레오폴트 코어의 핵심 원칙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레오폴트 코어는 현대사회의 '더 크게 크게'를 향한 움직임과 욕망에 평생 경고를 보내며, 대안을 제시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종교처럼 거대함을 추앙하는 현대의 경향을 그는 딱 세 단어로 정리했다.

'Bigger is better(클수록 더좋다).'

레오폴트 코어는 나치를 피하여 미국으로 와서, 1943부터 뉴저지 주의 럿거시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세계 경제력의 반 이상을 차지하며 경제 대국과 군사 대국에 냉전 시대 소련에 맞서 모든 걸 크기로 압도하려는 미국에서 그는 이단자 취급을 받았다. 특히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의 폭압에 떠밀려 1955년에 미국 본토를 떠나 푸에르토리코로 가서 가르치다가 영국으로 가게 된다. 그가 미국을 떠난 4년 후인 1959년, 매카시즘의 폭력성도 조금은 무디어진 시대에 크기에 대한 미국인의 관념에 반전을 일으키는 광고가 나온다. 20세기 최고의 인쇄광고이자, 카피로 꼽히는 자동차 폭스바겐의 미국 진출 광고의 헤드라인이다.

'Think small'

폭스바겐의 광고는 화려한 테일 핀을 붙이고, 8기통에 6천CC 이상 배기량의 대형 자동차들이 주목을 받던 1950년대 미국 자동차 시장에 소형차의 교두보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결코 주류(main stream)가 되지는 못했다. 이후 오일쇼크를 몇 차례 겪고, 일본 자동차가 합리성을 내세우며 밀고 들어왔지만, 대형 자동차를 향한 미국인들의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사이즈-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책의 지은이인 바츨라프 스밀의 차는 혼다 시빅이라고 한다. 운전자를 몸무게 70킬로그램의 성인이라고 하면, 혼다 시빅의 무게는 18배라고 한다. 이 비율이 최초의 대중 자동차인 포드 모델 T는 7.7에 불과했는데, 이제 웬만한 SUV 차량은 거의 40에 이른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며, 'Think small'에서 나아가 'Less is more(덜수록 더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수 미국인의 손바닥과 손목에 그를 구현했다는 제품을 안기고 채웠지만, 자동차에서는 별로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것 같다.

'더 크게, 더 좋게, 더 강하게(Bigger, better, stronger)'

국가 전체를 두고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인사가 대통령을 지내고, 두 번째 그 자리를 노리고 있다. 'Think small'하며 'Small is beautiful'을 만끽하는 '소량(小亮)'의 세계가 오는 그런 반전은 결코 올 수 없는 것일까.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서경대학교 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