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재즈 사랑은 일상 속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자카야, 소바가게, 맥도날드 하물며 동네 라면 가게에서까지 배경음악으로 재즈나 보사노바 음악을 흔히 들을 수 있다. 이자카야에서 일본 사케를 마시면서 ‘데이브 브루벡 (Dave Brubeck)’의 ‘테이크 파이브 (Take Five)’ 연주를 듣는 것도 꽤 색다르고 흥미로운 경험일 것이다. 검증된 얘기는 아니지만, 재즈의 본고장 미국보다 재즈 팬이 많다고 하며 재즈 관련 음반 매출로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뉴욕의 ‘블루노트 (Blue Note)’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동경의 블루노트에서 연주하는 것이 출연료를 더 많이 받는다. 재즈와 관계가 깊은 소설가로서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가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약 7년 동안 재즈 카페를 운영했는데 그때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계속 재즈를 들었다고 한다. 소설가가 안 되었으면, 동네에서 재즈 카페 사장으로 계속 남아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우화는 유명하다. 유명한 재즈 뮤지션도 많이 배출하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색소폰 연주자로는 ‘와타나베 사다오(Sadao Watanabe)’가 있는데 보사노바, 퓨전 등 다양한 장르에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일본 재즈를 세계에 알린 선구자로 알려졌다. ‘우에하라 히로미(Hiromi Uehara)’는 독창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연주 스타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과 투어에 참가하였으며 그래미상을 받았다. 클래식과 재즈를 결합한 독특한 음악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재즈 음악은 마케팅으로도 잘 활용되고 있다. 무지(MUJI) 매장에서는 잔잔한 재즈 음악이나 보사노바 같은 배경 음악이 자주 흘러나온다. 무지의 심플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잘 어울려 쇼핑이하는 동안 차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무지가 추구하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광고 캠페인이 재즈 음악을 배경으로 제작된다. 재즈는 "세련됨", "차분함", "성숙함" 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급품이나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광고할 때 특히 적합하다. 재즈 카페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어, 음악적인 친근감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광고회사 하쿠호도는 ‘TEAM JAZZ’라고 하는 프로젝트팀을 운영하고 있다. 재즈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세션'이라는 연주 방식이 있는데 클래식 콘서트처럼 악보에 따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베이스, 드럼 등 각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서로 영감을 주고받아 더 높은 수준을 목표로 하나의 곡을 완성해 가는 연주 방법이다. TEAM JAZZ라는 이름에는 재즈의 세션이 구현하는 이러한 "공동 창조와 융합"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Jazz Town Kobe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과 맞서 싸운 섬나라 일본이 어떻게 미국의 흑인 사회에서 시작된 예술에 열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재즈는 1910년대 태평양을 오가는 호화 여객선을 통해 일본에 전해졌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던 선박의 음악가들이 일본에 돌아와 호텔 로비 등에서 연주하며 초기 재즈를 소개했으며, 이는 일본 재즈 문화의 기반이 되었다. 또한, 필리핀 음악가들이 재즈를 배워서 고베, 오사카 등지의 호텔과 호화 여객선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다.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재즈에 친숙했고, 일부 일본 음악가들은 재즈에서 즉흥 연주를 처음 경험한 것이 필리핀 음악가들로부터였다고 한다.
그 당시 재즈가 연주되었던 항구 도시 중 하나인 고베는 일본 재즈의 발상지이다. 1923년, 바이올리니스트 ‘이다 이치로 (井田一郎)’가 일본인 최초의 프로 재즈 밴드인 ‘래핑 스타즈 (Laughing Stars)’를 결성해 옛 고베 오리엔탈 호텔에서 재즈를 연주한 것을 계기로, 고베는 ‘일본 재즈 발상지’로 불리게 되었다. 당시 고베에도 호화 크루즈 여객선을 통해 들어온 댄스 밴드가 호텔 등 파티에서 연주할 기회가 많았고, 이 때문에 재즈가 유행 음악으로서 점차 널리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댄스홀에서 연주되는 댄스 음악으로 사랑받았던 재즈는 1950년경에 이르러 댄스 붐이 줄어들면서, ‘춤추는’ 재즈에서 ‘듣는’ 재즈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후 재즈 레코드를 감상하는 ‘재즈 카페’라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고베에서 번성하며 정착되었다. 그래서인지 현재 고베 시내에는 재즈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바가 많이 있다. 그리고 저렴한 요금으로 수준 높은 재즈를 들을 수 있는 라이브 하우스도 많다.
참고로 고베시(神戸市)는 일본 효고현의 현청 소재지로, 인구 약 150만 명의 일본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이자 도쿄와 요코하마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항구 도시이다. 1853년 쇄국 정책 종료 이후 서양과의 무역을 위해 개항한 도시 중 하나로, 그 이후로도 국제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야경으로 매우 유명하며, 롯코산에서의 전망은 나가사키, 하코다테와 더불어 일본 3대 야경 중 하나로 꼽힌다.
2023년에는 고베 재즈 100주년을 맞아 기념 행사와 거리 곳곳에서의 라이브 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가 개최되었다. 고베의 재즈는 최첨단 모던 재즈보다는 조금 오래된 시기의 재즈인 ‘스윙’이 주류이다. 이를테면 옛날의 멋을 간직한 재즈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모던 재즈 연주자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안다’라는 것이야말로 고베 재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디자인의 도시임과 동시에 재즈의 도시
2008년, 고베는 ‘유네스코 창의 도시 네트워크 (UCCN: 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의 하나로 "디자인 창의 도시(Creative City of Design)"로 지정된 이후, 디자인을 현대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도구로 활용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Be Kobe"라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을 채택하여 디자인을 도시 개발, 문화, 그리고 도시 환경에 통합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민의 성장과 행복을 중시하는 현대적인 디자인 도시로서, 디자인이 아름다움과 공감을 전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고베는 디자인의 도시임과 동시에 재즈의 도시이다. 이 두 개념은 디자인과 음악이라는 창의적 표현의 형태는 다르지만, 문화적 창의성, 예술적 표현, 혁신이 중요한 고베에서는 서로 겹친다. 강력한 디자인 문화를 조성하고 있는 고베는 예술과 창의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보여주는 한 예로 재즈 같은 음악 유산도 소중히 보존하고 기념하고 있다. "재즈의 도시"는 더 큰 창의적 도시 비전의 일부가 되어, 고베의 문화적 활력과 정체성에 기여할 수 있다.
미국에서의 재즈의 심볼이 뉴올리언스라면 일본에서 재즈를 상징하는 도시는 고베이다.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국적인 재즈 라이브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디자인과 재즈라는 두 단어로 확실하게 포지셔닝 해서 좀 더 적극적인 도시 브랜딩으로 차별화된 고베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고베를 방문하게 될 때면, 계획이 확실하다. 여유를 가지고 야경도 즐기고, 각종 재즈 이벤트에도 참여하며 마지막 밤에는 라이브 재즈 하우스 세 곳 정도를 돌며 마음껏 재즈의 매력을 느끼고 돌아오고 싶다. 재즈에 흠뻑 빠져보는 경험을 하고 싶다. 2022년에 Blue Note Aoyama에 이어 Blue Note Tokyo Ebisu가 오픈하였다. 규모도 크고 유명하고 상업적이다. 이런 곳도 좋지만 몇 년 전 고베에 사는 친구와 고베 시가지를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조그마한 라이브 하우스에서 들었던 재즈의 경험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칵테일과 함께 감미로운 재즈 선율에 다시 한번 좀 더 푹 빠져보고 싶다.
양경렬 나고야 상과대학(Nagoya University of Commerce and Business)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