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서 유학 생활하던 1999년 말 포켓몬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겨울 방학에 위스콘신주 매디슨이라는 곳에서 2시간 반 운전해서 시카고에 사는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포켓몬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다.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이라고 생각하는데 친구 아들이 포켓몬 카드를 보여주면서 캐릭터 이름을 줄줄이 외우고 있는 것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종류도 상당했던 것 같았는데.
1998년 미국에서 처음 데뷔한 포켓몬은 순식간에 문화적 현상이 되었으며, 엔터테인먼트의 여러 측면을 장악했다. 1999년 한 해에만 포켓몬 카드는 전 세계적으로 4억 장 이상 판매되었고 이 중 상당수가 미국에서 팔렸다. 이러한 인기 때문에 일부 학교에서는 카드 거래로 인한 분쟁과 학습 방해를 이유로 ‘포켓몬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포켓몬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선 존재였다. 포켓몬 시리즈를 상징하는 캐릭터인 ‘피카츄’는 매력적인 디자인의 대표적인 예이다. 포켓몬 카드의 인기는 아직 진행형이며 작년에는 피카츄 캐릭터 카드 1장이 유튜버 겸 열혈 포켓몬 카드 수집가에게 527만 5000 달러(당시 환율 약 70억 원)에 이베이를 통해서 낙찰됐다는 소식도 있다.

포켓몬 시리즈의 원점은 1996년 2월 27일에 출시된 ‘포켓몬스터 빨간/초록’이라고 하는 오리지널 게임에서 시작되었다. 같은 해에 출시된 포켓몬 카드는 일본 발의 트레이딩 카드 게임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현재 14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529억 장 이상이 판매된 대히트 상품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트레이딩 카드 게임으로 사랑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대회와 이벤트에서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폭넓은 세대의 플레이어들이 모여 각국의 언어로 된 카드를 사용해 소통하면서 대전을 즐기고 있다.
1997년에 시작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포켓몬이 세계적으로 성공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포켓몬 게임의 세계관을 확장하며, 새로운 팬층을 형성했다. 1998년에는 미국에서 방영이 시작되었으며 1999년에는 미국 내 6세에서 11세 아동의 65% 이상이 포켓몬 애니메이션을 정기적으로 시청했다고 한다. 이러한 인기는 일본, 미국에만 그치지 않고 전 세계로 퍼지면서 포켓몬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선풍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포켓몬은 라이선스 비즈니스에도 진출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 2022년, 포켓몬 관련 상품의 시장 규모는 약 116억 달러에 달하며, 전년 대비 36.5% 증가한 수치이다. 여기에는 게임, 장난감, 의류, 액세서리,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 가정용품, 출판물 등 다양한 제품들이 포함된다. 2023년에는 개관 50주년을 맞이한 고흐 미술관과의 컬래버를 통해 문화 분야로도 진출하며, 브랜드의 확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포켓몬은 1996년에 출시된 가정용 게임에서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굿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브랜드를 확장해 오면서 미디어 믹스에 성공한 콘텐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믹스 총수익은 2019년 기준으로 921억 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랭킹 1위이다.
IP에서 미디어 믹스의 의미
원래 "미디어 믹스"는 광고 용어로서, "상품을 광고하거나 홍보할 때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여러 매체를 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미가 확장되어 현재는 IP 비즈니스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IP 비즈니스에서의 미디어 믹스를 “소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컴퓨터 게임 등의 분야에서 특정 엔터테인먼트 상품이 일정한 시장을 형성하거나 형성할 것으로 기대될 때, 원작 상품에서 파생된 상품을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를 통해 다수 제작하여 팬 서비스와 상품 판촉을 확대하는 방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IP의 미디어 믹스 전략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현재의 미디어 환경과 관련이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통신 속도의 향상으로 콘텐츠가 디지털화되면서 사람들이 콘텐츠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엔터테인먼트 소비 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였다. 그리고 과거의 미디어 믹스 전략은 주로 전통 매체 중심이었기 때문에 미디어에 따라서 시차가 발생하곤 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각 카테고리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다양한 미디어에서 동시 전개가 가능하게 되었다.
미디어 믹스 효과
미디어 믹스 전략을 통해서 얻는 효과는 상당하다. 먼저 미디어 간의 상승효과를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만화 원작이 애니메이션화되면 원작 만화의 판매량이 증가하거나, 게임으로 확장되면 게임에서 사용된 음악이 판매되는 등 새로운 미디어의 활용이 다른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일으킨다. 다시 말해, 여러 미디어에서 확장은 콘텐츠의 프로모션에도 기여하여 상호적으로 매출을 상승시키는 "눈덩이 효과"를 만들어 내면서 수익 창출의 다각화에 기여한다.
수익 창출의 다각화에 그치지 않는다. 미디어 믹스를 통해서 IP의 브랜드화, IP의 장수화가 가능하다. 특히 만화가 애니메이션화될 경우, 캐릭터는 다채로운 색상과 움직임을 가지게 되면서 IP의 세계관을 더욱 직접 전달할 수 있다. 또한, 파생 작품을 통해 이야기의 완결성을 더할 수도 있다. 이처럼, 미디어 믹스를 통해 IP의 세계관이 구체적이고 역동적으로 표현되면, 라이선스 비즈니스가 활성화되고 팬들과의 유대감이 깊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면서 브랜드를 강화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콘텐츠의 수명을 연장하고 장기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 그 결과, IP는 거대한 "경제권"으로 성장하여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포켓몬이 전형적인 예이고 몇 년 전 대히트한 ‘귀멸의 칼날’도 10조 원 이상의 경제권을 형성했다고 추정된다.
여가 시간 쟁탈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공존하는 동반자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음악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인터넷 이전에는 전용 기기나 종이 매체를 통해 각각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한 장소에서 통합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구독 모델이 보편화되면서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서비스 시장 규모는 크게 성장하고 있다. 이렇게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모델이 큰 전환점을 맞이하는 가운데, 사람들의 이용 트렌드도 바뀌었다. 유료로 동영상, 만화, 음악, 게임을 이용하는 사람 중 2개 이상의 카테고리 콘텐츠를 즐기는 사용자 비율이 절반에 가깝다고 한다. 또한, "만화와 동영상", "만화와 동영상과 음악", "만화와 동영상과 음악과 게임" 등 여러 디지털 콘텐츠 카테고리를 병행해서 이용하더라도 각 콘텐츠에 소비하는 시간이 반드시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용하는 카테고리가 늘어날수록 시간이 더해지는 형태로 증가하며,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즐기는 여가 시간의 총합도 늘어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영역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으며, 미디어 간의 여가 시간 쟁탈전이 발생하지 않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 제공되는 콘텐츠라 하더라도, 공존할 수 있는 동반자라는 시너지를 중시하는 전략이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디어 믹스와 한국발 IP의 글로벌 성공
이상을 정리하면 미디어 믹스 전략은 단순히 수익의 다각화를 넘어, IP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중에서도 애니메이션은 IP 비즈니스의 미디어 믹스 전략에서 기폭제 역할을 한다. 애니메이션화를 통해 IP의 세계관을 직접 전달함으로써, 높은 홍보 효과를 발휘한다. IP 비즈니스에서 미디어 믹스가 사업 확장을 위한 바른길이다. 어필하려는 목적에 맞는 미디어를 조합함으로써 폭넓은 타깃층에 접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새로운 팬을 얻을 수도 있다.
디지털화가 진전되어 영역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동영상, 만화, 음악, 게임 등 모든 방향에서 사용자에게 동시에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세계가 형성되고 있다.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이 증가한 현재, 사람들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콘텐츠를 시청하며 곧바로 화제를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사용자를 확보하려면 처음부터 카테고리와 미디어를 가로지르는 관점을 가지고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콘텐츠를 가로지르며 즐김으로써 하나의 세계관이 완성되는 전방위적인 크로스미디어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기존보다 히트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지난 칼럼에 한국발 콘텐츠로 ‘나 혼자만 레벨 업(영어 제목: Solo Leveling)’을 소개했다. [Trend Japan] 일본의 IP 산업 (Part II): ‘아니메’ 콘텐츠의 새로운 변화 - 매드타임스(MADTimes) 참조. 한국 웹툰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넷플릭스(Netflix)’와 애니메이션 전문 OTT인 ‘크런치롤(Crunchyroll)’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로 유통이 시작되었다. 바로 이어서 게임 회사인 넷마블에 의해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라고 하는 게임으로 IP가 확장되었다. 출시 당일 국내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 출시 5일 만에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1위에 올랐다. 출시 5개월간 누적 이용자 수는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나 혼자만 레벨업: 리어웨이크닝 (Solo Leveling -ReAwakening)’이라는 영화로 개봉되었다. 웹툰으로 시작된 한국발 IP가 미디어 믹스(Media Mix)를 통해 확장해 가는 새로운 시도이다. 새로운 콘텐츠로 각색되어 IP 스토리의 생명력을 연장하고, 시청 연령층 확대와 팬덤 다각화를 꾀할 수 있다.

양경렬 나고야 상과대학(Nagoya University of Commerce and Business)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