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극장 광고 "진로 파라다이스": 한국 만화광고 개척자 신동헌(申東憲)

[신인섭 칼럼] 극장 광고 "진로 파라다이스": 한국 만화광고 개척자 신동헌(申東憲)

  • 신인섭 대기자
  • 승인 2025.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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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Edison and Einstein & Shin, Dong-Hun “에디슨과 아인슈타인  & 신동헌”- 청강만화 역사박물관

아마도 이 글을 읽기 전에 이 글 제목을 검색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소주 진로를 만들어낸 65년 전 흑백 극장 광고를 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광고를 보면 정신이 바짝 든다. 그리고 웃음이 나오며 활력이 솟아난다. 술을 마시거나 안 마시거나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림은 전시회 팸플릿 표지 치고서는 멋들어진 헤드라인이다. 더군다나 영어와 한국어 두 말이다. 2002년 10월 31일 청강 만화 역사박물관 기획전의 책자이다. 전시 내용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역사, 특히 애니메이션 영화광고의 선각자 신동헌 화백의 작품 전시이다.

팸플릿 외에 "청강 만화 역사박물관"이라는 전단도 있다. 

바이올린 연주하는 그림이 있는 팸플릿과 전시회 전단
바이올린 연주하는 그림이 있는 팸플릿과 전시회 전단

두꺼비 소주 진로를 유명하게 만든 한국 최초의 진로 파라다이스 애니메이션 광고의 성공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우선 한국 최초의 50초짜리 애니메이션 광고 작품이라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3년간의 동족상쟁인 한국전쟁에서 쫓겨간 항구 부산, 찌들대로 찌든 가난한 사람들의 보너스 진로 한 잔의 소주가 주는 파라다이스, 미군 스케치가 밥벌이가 된 작가 신동헌, 게다가 (인민군의) 납치를 모면한 함경도 3.8 따라지라는 겹겹 쌓인 사회환경에서 나온 외침이 이 광고였다. 팝아트로 데뷔한 가사와 곡에 힘을 실어준 작가 신동헌의 남다른 음악 이해가 이 CF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50초짜리 광고의 장면을 보면 1950년대 한국 사회의 축소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고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게다가 광고주인 진로의 고향은 평양에서 남포로 가는 철도 역의 하나인 진지동이란 참진(眞)자에 이슬 로(露)를 붙인 브랜드이다. 공교롭게도 광고주, 제품명, 작가가 모두 광복과 분단의 산물이다.

신동헌과 그의 작품 그리고 인생관은 다음 그림과 캡션, 그리고 그의 짤막한 글에 잘 나타나 있다. 팸플릿 14페이지 있는 “미술과 음악의 만남”에는 80이 다 된 그의 해학섞인 말이 나와 있는데 그대로 옮긴다.

신동헌은 8순이 다 된 나이에도 앳되고 천진하다.

“흡연 음주 등 의사가 하지 말라는 일은 다 했더니 건강해지더라”는 코믹한 그의 말이 평생 작가로 살았던 여유가 보인다.

또 다른 말이 하나 더 있다.

베레모와 하연 담배 연기, 술 기운에 흥얼대는 클래식 한 구절이 신동헌의 근래 모습이다.

언제나 스케치북과 연필을 가지고 다닌다.

전철 안에서 음악회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멋들어지게 행복한 작가의 삶을 그리고 있다.

날짜와 서명이 들어 있는 어느 음악회 스케치는 72세 때 그의 작품이다.    

1988년 음악회 스케치
1988년 음악회 스케치

초창기 만화에는 사회성, 정치성을 띤 듯한 만화들이 있는데, 4개는 모두 캡션이 있다.

대신 언덩이에 그리는 문으로 잘 봐주슈

혓바닥 두 개 정도 줄여라

아뿔싸

서울 바람 시골 바람

“1996년 남자 드로잉”과 “1999년 겨울거리” 두 그림에는 신동헌의 작품에 관한 생각이 글로 나와 있다. 1996년 남자 드로잉에서는 “누드 드로잉은 인체를 표현하는데 가장 중요한 학습방법”이다. 1999년 겨울 거리 드로잉에서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스케치다”라고 되어 있다.

1996년과 1999년 그림
1996년과 1999년 그림

베레모와 파이프를 물고 있는 신동헌의 말이 적혀 있는 이 그림에는 “삶은 예술”이라는 말 그리고 그 다음의 “평생을 작업하며 살아온 나는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철학적인 시사를 주는 말이다.    

신동헌은 왜 표지에 영문으로 Edison and Einstein & Shin, Dong-Hun이라 썼는가 하는 궁금증이 풀리는 듯하다. 때로는 침식을 잊고 일에 매달리던 에디슨에 관한 이야기, 여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아마츄어 바이올린 연주가인 아인슈타인과 신동헌 사이에는 유사점이 있을 듯하다. 아마도 신동헌의 이 그림과 말은 특히 광고를 업으로 하는 모든 사람이 첫 강의 시간에 익혀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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