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작년 12월의 세계 광고 산업 큰 뉴스는 미국 1, 2위의 광고회사(지주회사) 옴니콤과 인터퍼블릭의 합병이었다. 그 결과 세계 1위이던 광고회사인 영국의 WPP는 그 자리를 잃게 되었다. 1위 자리 잃었다고 회사에 일 나는 것은 아니다.
해가 넘은 올해 초에는 프랑스 최대인 퍼블리시스(Publicis)가 시카고에 본사를 둔 레오 버넷(Leo Burnett)과 합병한다는 소식이다. 레오 버넷은 미국 중부인 시카고에 자리 잡은 광고회사로서 1935년에 창설했다. 그러니 미국 혹은 세계 광고의 중심지인 뉴욕 매디슨가 출신은 아니다. 1935년이면 아직 1929년 미국에서 시작해 온 세계로 퍼진 세계 대공황 영향이 아직 남아 있던 때였다. 사무실에 찾아오는 모든 손님에게 빨갛고 싱싱한 사과 한 알을 드렸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버넷은 지금 손꼽는 기업이 된 회사의 브랜드를 키운 광고회사이다.
세계적인 광고 전문지라고 할 Advertising Age(애드에이지) 1999년 특집에서 버넷이 남긴 업적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 특집은 20세기를 광고의 세기라고 부른 애드에이지가 20세기 미국 광고를 매듭한 기록이기도 하다.) 애드에이지는 이 특집에서 20세기의 미국 10대 아이콘, 100대 광고, 100대 광고인을 골랐다. 버넷은 10대 아이콘 가운데 셋을 창작했는데 세계 최대의 담배가 된 말보로가 20세기 미국 아이콘 1위에 올랐다. 그리고 6위 필즈베리의 도우보이와 9위 켈로그의 Tony the Tiger가 선정되었다. 100대 광고 가운데 셋째는 말보로 담배였다. 1위가 독일의 폭스바겐, 2위가 코카콜라였다. 10대 광고인 가운데 셋째로 뽑힌 사람이 창설자인 레오 버넷이었다. 실로 경이적인 일이었다. 레오 버넷은 광고의 생명인 창의성이란 말 자체였다고 해도 잘못이 아닐 만큼 뛰어난 업적을 세웠다.
수입 기준으로 세계 2, 3위를 다투는 프랑스 최대의 퍼블리시스(Publicis)가 탐을 내서 이해할 만했다. 퍼블리시스는 데이터와 테크에서 손꼽는 지주회사이다. 합병한 뒤 퍼블리시스는 레오 버넷이란 이름 가운데 레오(Leo)를 따서 새로 크리에이티브 조직을 만들었는데 'Creative Constellation'(새로운 성좌(星座)로서 이름은 레오(Leo)라 부르기로 했다. 그 결과 퍼블리시스 뉴욕은 레오 뉴욕으로 부르기로 했다. 레오 버넷 시카고는 앞으로 레오 시카고라 부르게 된다. 버넷이란 이름은 사라지지만, 레오라는 유산은 합병의 결과 더 많은 사무실 문에 나 걸리게 된다는 것이 합병을 찬성하는 측의 의견이다.
만사가 그렇듯이 레오 (Leo)라는 이름은 남으나, 버넷 (Bernett)이란 이름이 사라지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레오 버넷의 이전 사원들 가운데는 버넷은 없애고 레오로 통일한다는 것은 눈가림이라 주장하는 견해도 있다. 그런 주장에는 선례가 있다.
아직은 세계 최대의 광고회사 그룹인 WPP이 2023년 10월에 VML Y&R과 Wunderman Thompson을 합병한 결과 Y&R(Young & Rubicam) 과 J. 월터 톰슨이란 이름은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 때는 미국 나아가서는 세계 최대의 레거시(Legacy. 유산) 광고회사를 합병이라는 미명 하에 말소한다는 것이다. 효율과 효과, 더 적은 투자로 더 많은 수입을 얻기 위해서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레오 버넷의 경우는 그 독특한 창의적 광고 철학과 증명된 실적은 지워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유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레오 버넷 창설자 버넷이 1967년 은퇴 연설에 남긴 유명한 연설을 들고 있다. 그 연설의 제목은 “When to take my name off the door(대문에서 내 문패를 뗄 때)”이다.
That will be the day when you spend more time trying to make money and less time making advertising, our kind of advertising. (우리가 믿는 그런 광고를 만드는 것보다 돈 벌이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바로 그런 날입니다.) (자료: Leo Burnett on 'when to take my name off the door'. 애드에이지. 2025.1.14.)
광고의 진수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믿으며 실천한 레오 버넷의 숨김 없는 고별 연설이 퍼블리시스와 합병에 때맞추어 애드에이지에 보도된 것이다. 그것이 허세가 아닌 것은 앞에 적은 세 가지 영예를 받은 광고회사는 레오 버넷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보도가 나간 기사에는 퍼블리시스의 로고와 Leo라는 서명, 그리고 성좌 (Constellation)이란 말이 그림으로 나와 있다.
버넷이 말한 훌륭한 광고란 어떤 것인가? 그가 좋아한 참된 광고 그리고 광고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1939년의 Erwin Wasey 광고회사의 광고가 있다. 제목은 “Written After Hours, 일과 후에 쓴 글”이라 번역했다.
1976년 7월 3일 서울 중학동 한국일보 녹실에서 <서울 카피라이터즈 클럽. Seoul Copywriters Club. SCC>이 창설되고 초대 회장이 된 사람이 신인섭(나)였다. 1977년에는 그가 쓴 『廣告(광고) Copywriting』이 출판되었다. 한국 최초의 광고 카피 책이었다. 출판할 돈이 없어 14개 회사의 찬조 광고를 받았다. 출판은 당시 유일한 한국 광고 단체이던 한국광고협의회가 앞장섰다. 책 값은 무료. 저자 고료 역시 무료. 신인섭이 번역한 “일과 후에 쓴 글. Written After Hours가 책의 첫머리였다.
2024년 12월에는 미국 1, 2위 광고회사가 합병했다. 한 달 뒤 2025년 1월에는 프랑스 최대의 광고회사가 미국 레오 버넷을 합병했다.
AI가 카피를 쓰는 시대가 되었다. 카피 뿐 아니라 더 많은 광고 일을 AI가 대신 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카피, 아트, 촬영, CM Song 작곡, 매체 계획 수립과 집행, 조사, PR, 판촉,행정 등 디지털화된 업무...드디어 광고회사가 하는 모든 일을 기계가 하는 날이 올까?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