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달 전 글로벌 광고 업계의 상징적인 인물인 WPP의 마크 리드(Mark Read) CEO의 퇴진 소식이 업계에 상당한 충격파를 던져주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CEO 교체가 아니라 대행사 모델 전환에 대한 신호탄이자 AI, 커머스 중심으로 재편되는 광고 시장에 대한 구조 전환 압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약 한달이 지난 시점에서 이번 소식이 시사하는 바와 향후 변화에 대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WPP,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어려움
퇴진의 배경은 지속된 실적 부진과 광고주 이탈 등이 많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AI 시대에 대응 부족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WPP에서 공개한 자료에 여러가지 힌트가 있습니다. WPP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과 2024년 광고주 요구가 극명하게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크리에이티브 캠페인은 1/3 수준으로 급감한 반면, 고객 경험(CX), 퍼포먼스 마케팅, 커머스 영역의 요구가 급증하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 같은 요구에 대한 대응 어려움이 리더쉽 교체로 나타났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대행사 모델, 어떻게 변화하는가?
전통적인 대행사 중심의 모델이 애드테크와 퍼스트 파티 데이터(1st party data) 중심의 ‘기술 기반 운영형 에이전시(Tech-enabled Operating Agency)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습니다. 독립 에이전시가 부상할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WPP와 같은 홀딩 컴퍼니들이 통합, 효율을 중요시하는데 반해 독립 에이전시들은 독자적 애드테크, 데이터에 기반한 변화에 빠르게 대응이 가능합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뚜렷하지는 않지만, 해외에서는 엑센추어, 딜로이트 등 컨설팅사가 애드테크, 데이터, AI 전문성을 바탕으로 광고 대행 부분으로 영역을 크게 확장하는 것도 주목해야 할 특징 중 하나입니다.
AI에 대한 투자도 더욱 중요해질 전망입니다. WPP 역시 대규모 AI 플랫폼(WPP Open)에 투자하며 대응했지만, 아직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전통적 기반에서 효율성 중심으로 AI를 활용해야 하는 점과 홀딩 컴퍼니 특성상 대규모 인력과 광고주 요구를 맞춰야 하는 문제로 인해 빠르게 대응키 어려운 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이 누적되면서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 및 미래 전망도 암울해지면서 퇴진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입니다.
국내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 문제점들을 좀 더 살펴보면, 시사점이 좀 더 명확해질 것 같습니다. WPP 광고주들의 요구 변화를 다시 살펴보면, 가장 크게 요구가 증가한 영역은 ‘커머스’ 입니다. 고객경험(CX)도 넓은 의미에서 커머스 개선 역할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커머스 관련 요구가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상황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광고주의 커머스 관련 요구가 크게 부각된 반면, 대형 전통 대행사는 이에 대한 대응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는 느린 의사 결정, 여러 계열사간 시너지 부족, 기술 내재화의 어려움 등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AI의 대응 부족도 계속 고민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영역의 AI 대체 뿐만 아니라 애드테크, 데이터와 연계된 AI 활용이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대형 대행사의 대응이 요구수준과 차이를 보이는 상황입니다.
국내 업계에 시사하는 바도 명확합니다. 과거 대행 체재에서 데이터, 애드테크, AI 기반으로 전환 압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커머스 관련 요구 증가는 국내에서도 이미 확산 중입니다. 커머스를 잘 대응할 수 있는 독립, 애드테크 기반의 대행사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WPP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고객사의 70% 이상이 즉각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코로나19 이후 크게 변화된 고객의 변화 중 하나입니다. 국내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내 광고주들의 변화도 이미 진행중입니다. 국내에서는 광고를 전담하는 팀과 자사몰 등 영업 조직이 별도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몇몇 회사들이 이를 통합하거나 상호 연관되도록 업무 플로우를 변경하고 있습니다. 국내 디지털 커머스 시장은 크게 쿠팡 기반, 네이버 기반(스마트스토어, 브랜드스토어), 자사몰(광고주가 직접 운영하는 쇼핑몰) 등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각각 영역에서 필요한 전문성이 다릅니다. 일부는 광고주가 직접 운영(담당) 하기도 하고, 일부는 대행사와 협업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아마존에서 미국 시장을 상대로 K-뷰티 화장품을 팔거나, 동남아에 쇼피파이를 통해 자사몰을 운영하는 경우 등 국경도 넘나들 만큼 영역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CRM 마케팅 채널인 카카오 메시지가 급성장하는 것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변화를 위한 제언
기존 대행사는 기술 파트너로 전환 전략이 필요하고, 독립 에이전시는 CRM 마케팅, 커머스 역량 내재화를 가속화해야 합니다. 특히, 애드테크 영역에서 핵심으로 부각되는 CRM 마케팅 영역에 투자를 확대해야 합니다. 자사몰 고객 재방문, 재구매를 유도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거나, 스마트스토어를 연계해서 분석하거나, 리뷰 데이터를 분석해서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등 기존에 ‘대행사 영역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 분야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CRM 마케팅, 커머스, 고객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커머스 관련한 영역’은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닙니다. WPP의 사례에서 보여주듯 ‘대행사의 미래’는 ‘기술과 데이터 기반한 실행력’에 달려 있습니다.
한창희 펄스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