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드타임스 최영호 기자] 시민의 시위권은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며, 역사적으로 사회 진보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평화로운 집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유가 점차 제약받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한 그린피스(Greenpeace)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엘비스(elvis)는 '광고판은 체포할 수 없다(They can’t arrest this billboard)'는 제목의 디지털 시위 캠페인을 런던, 맨체스터, 버밍엄 세 도시에서 동시에 전개했다. 이번 캠페인은 거리 시위가 실제로 체포의 위험을 수반하게 된 상황을 비판하며, 활동가들이 디지털 옥외광고(Digital Out of Home, DOOH) 화면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획됐다.
광고에는 '밖에서 체포당하지 않기 위해 여기서 시위합니다'라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든 여섯 명의 시민 활동가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과거 실제 거리 시위에 참여한 이력이 있으며, 지금도 같은 사안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다. 디지털 광고판은 이들의 시위 모습을 실제 거리처럼 구성해, 행인들이 실제 시위를 접하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하도록 연출했다.
참여한 활동가로는 ▲팔레스타인 인권 지지자이자 배우인 칼리드 압달라(Khalid Abdallah), ▲공공의료 지지 시위를 벌여온 헬렌 솔즈베리 박사(Dr. Helen Salisbury), ▲장애인 권익을 위한 앤디 그린(Andy Greene), ▲기후운동가이자 그린피스 영국 이사인 앤드루 맥팔랜드(Andrew McParland), ▲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가이자 작가인 젠 리드(Jen Reid), ▲환경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학자 사하니카 라트나야케(Sahanika Ratnayake) 등이다.

이 캠페인은 국제앰네스티 영국지부, 지구의 벗, 시민자유단체 리버티와 협력해 진행되었으며, 시민들이 현재 위협받고 있는 시위권에 대해 인식할 수 있도록 광고판에 QR 코드도 함께 배치했다. QR 코드를 스캔하면 현재 영국 의회를 통과 중인 ‘범죄 및 치안 법안(Crime and Policing Bill)’이 민주적 권리를 어떻게 제약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린피스가 발표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이후 런던에서 ‘공공 불편 조장 음모’ 혐의로 체포된 건수는 약 10배 증가했다. 그러나 이 중 실제로 기소된 경우는 단 18건(2.8%)에 불과해, 과잉 대응과 시위 억압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린피스 UK의 캠페인 총괄 자넷 홀(Janette Hall)은 “시민의 시위권이 눈에 띄지 않게 잠식당하고 있다”며, “이번 캠페인은 매체와 메시지를 하나로 결합시켜, ‘광고판이 시위의 마지막 보루가 될 수도 있다’는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제기한다. NHS부터 인권, 환경까지 다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용기를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엘비스의 전무이사 캐롤라인 데이비슨(Caroline Davison)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며 “많은 이들이 이런 억압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진짜 거리 시위만큼 강력하지는 않더라도, 이번 디지털 캠페인을 통해 지금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번 캠페인은 디지털 옥외광고 전문 기업 오션 아웃도어(Ocean Outdoor)가 주최한 '디지털 크리에이티브 콘테스트' 비영리 부문에서 골드상을 수상했다. 오션 랩스 UK의 멜라니 블러드(Melanie Blood)는 “지금은 새로운 방식이 필요한 시대”라며 “이번 캠페인은 광고라는 공간을 통해 민주주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BLM 운동가이자 『A Hero Like Me』의 저자 젠 리드(Jen Reid)는 “반인종차별 운동은 오랫동안 공권력 남용에 직면해왔다. 민주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때, 목소리를 내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며 “한 집단의 권리가 무시되면, 그것은 결국 모든 사람의 권리를 위협하게 된다. 그래서 ‘모두가 자유로워질 때까지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