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다녀왔다. 25년 만이다. 일본 고대의 모습과 다양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일본 최초 국가의 수도로 영화를 누렸던 도시, 나라(奈良)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오사카와 교토에서 가까워서 이 두 도시에서 당일치기 관광도 가능하다. 나라에 가면 꼭 방문하는 곳이 나라 공원이다. 공원과 주변 도로에는 약 1,200마리의 꽃사슴들이 자유롭게 다니고 있어서 나라 사슴 공원으로도 알려져 있다.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는데 사슴만은 기억에 생생하다. 사슴 농장이 아니라 공원이라는 이름처럼 공원 주위에는 울타리 같은 것이 없어서 사슴들이 관광객들과 섞여서 어슬렁거린다. 관광객들이 사슴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먹이용 센베이(煎餅, 밀가루에 달걀과 설탕을 넣어 만든 반죽을 틀에 넣고 굽거나, 쌀가루를 쪄서 만든 반죽을 넓게 펴서 굽거나 튀겨 만든 일본의 전통 과자)를 매점에서 구매해서 사슴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인도의 소처럼 사슴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일도 일상다반사이다. 인도, 차도, 신호등 가릴 것 없이 계속 걸어 다니고 있어서 사슴 조심하라는 노란색 표시판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이 사슴들은 나라 공원과 그 주변 및 산간 지역에 서식하는 사슴의 집단으로 195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야생 동물로, 소유자는 없다. 오래전부터 신의 사슴으로 보호받아 왔으며 무리를 지어 놀며 사람들에게 먹이를 구하는 모습은 나라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이처럼 나라 시는 사슴으로 상징화되었다. 관광객들이 사슴을 보러 올 정도로 사슴은 관광 자원으로서 경제적 가치가 엄청나다. 거기에다가 사슴이 있는 풍경이라는 경관적 가치, 신의 사슴으로서 종교적 가치, 나라 시를 대표하는 상징적 가치를 가지며, 나라의 사슴은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사슴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의 마스코트: 센토군
여기에 등장하는 것이 사슴을 소재로 한 캐릭터 ‘센토군’이다. 2010년에 열린 '헤이조 수도 이전 1300년 축제(平城遷都1300年祭)’ 때 태어난 마스코트 캐릭터로, 2008년부터 등장했다. 사슴은 나라에서 신의 사자라고 불리기 때문에, 사슴의 뿔을 머리에 달고 있는 동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본 지자체에서 개발한 느슨한 캐릭터를 의미하는 ‘유루캬라’로 소개되었는데 너무 인기가 많아서 2011년부터는 나라 현의 마스코트 캐릭터가 되었다.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간사이 대학의 미야모토 가츠히로 (宮本勝浩) 명예교수에 의하면 2018년 시점인 ‘센토군’의 탄생 10년 동안 나라 현에 약 2,105억 엔의 경제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 10년 동안 숙박 및 당일 여행객 수가 약 3,000만 명 증가하고, 33,150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되었다고 한다.
유루캬라 (Yuru Chara)
‘센토군’처럼 ‘유루캬라’가 일본 전역에서 유행이다. ‘유루캬라(Yuru Chara)’는 "느슨한"이라는 뜻의 "유루이(ゆるい)”와 "캐릭터(キャラクター) 일본식 발음 ‘캬라쿠타”의 합성어로, 지방 자치 단체, 기업, 이벤트 등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귀엽고 독특한 마스코트 캐릭터를 의미한다. 뭔가 느슨하지만, 매력 있는 캐릭터를 뜻한다. 이러한 캐릭터는 보통 지역의 특산물, 문화, 역사 등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지며, 친근하고 유쾌한 이미지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지역의 매력을 소개하는 데 활용되면서 지역 활성화에 기여한다. '느슨한 마스코트 캐릭터'인 ‘유루캬라’는, 관광객 유치, 지역 활성화와 특산품 소개, 이벤트 및 각종 캠페인 등 지역 전반의 정보 PR, 기업과 단체의 CI 등에 사용되고 있고 특히 ‘센토군’의 경우처럼 지역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고토치 캬라(ご当地キャラ)'(지역 캐릭터)라고도 한다.
일본 최고의 ‘유루캬라’를 선발하는 ‘유루캬라 그랑프리’ 대회가 2010년부터 개최되었다. 일본 전국의 지체와 기업들이 홍보를 위해 만들어낸 개성 넘치는 ‘유루캬라’들이 넘버원을 향해 경쟁을 벌이는, ‘유루캬라’를 위한 최고의 축제이다. "지역을 ‘유루캬라’로 활성화하자", "회사를 ‘유루캬라’로 활성화하자", "일본을 ‘유루캬라’로 활성화하자"라는 3가지 테마를 내걸고 개최되었다. 특히, 2015년에는 전국으로부터 참가 캐릭터 수가 1,727체라는 놀라운 숫자를 기록하며 최고조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대회가 중단되고, 2021년에는 온라인 개최로 진행되었으며 2022년에는 대회 자체가 종료되었지만, 아직도 ‘유루캬라’들의 활발한 활동은 지속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1년도 지역 캐릭터의 총수는 714개였는데 2021년도에는 1,553개로 10년 동안 두 배로 증가하였다. 참고로 한국 지자체만 보면 캐릭터는 2017년 기준 전국 242곳의 지방자치단체 중 214곳에서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19년 전국 행정 구역 현황의 226곳이니 사실상 거의 모든 지자체에서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단순 비교를 하기는 어렵지만, 일본의 ‘유루캬라’ 숫자는 놀랄 만한 수준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인이 ‘유루캬라’에 열광하는 이유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의미하는 ‘아니메 (Anime)’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동물을 모티브로 한 ‘유루캬라’는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동물 캐릭터와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어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애니메이션 팬 중에는 좋아하는 ‘유루캬라’의 출신지를 방문하는 사람도 많아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쿠마몬’이 만들어낸 기적
‘유루캬라’중에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는 ‘쿠마몬(Kumamon)’을 들 수 있다. ‘쿠마몬’은 일본 쿠마모토 현(Kumamoto Prefecture, 熊本県)의 공식 마스코트 캐릭터이다. ‘쿠마몬’은 곰을 뜻하는 일본어 ‘쿠마(熊)’와 사람이라는 의미의 쿠마모토 지역 사투리 ‘몬’을 합쳐 이름을 지은 흑곰 캐릭터이다. 쿠마모토 현의 관광을 홍보하고 지역 특산품을 널리 알리기 2010년 3월 큐슈 신칸센 개통을 기념하여 위해 만들어졌으며, 사랑스러운 외모와 친근한 캐릭터로 전국 및 해외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쿠마모토 곳곳에서 ‘쿠마몬’을 만날 수 있다. 구마모토의 관문인 공항, 터미널, 기차역을 비롯 일상 곳곳에 ‘쿠마몬’이 자리하고 있다.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면 항공기 기장 옷을 입은 ‘쿠마몬’을 가장 먼저 만난다. 기차역에는 역장 옷을 입은 ‘쿠마몬’이 탑승객을 맞이한다. ‘쿠마몬’의 인지도는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 등 해외에서 높으며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각지에 기간 한정 팝업 스토어가 오픈할 정도로 인기가 확산하고 있다. 주로 SNS를 통해서 확산되고 있으며 ‘쿠마몬’을 만나러 일부러 일본에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2022년 ‘쿠마몬’을 활용한 상품의 연간 매출액은 1,590억 엔에 달했고 2011년 조사 시작 이후 누적 매출액은 1조 2932억 엔으로 어마어마한 경제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
매력적인 동물 캐릭터의 힘
동물 캐릭터가 관광지와 지역을 홍보하는 데에도 성공적으로 사용되어, 그들의 매력을 높이고 독특한 정체성을 창출하는 데 기여한 예는 적지 않다. 호랑이를 소재로 한 ‘호돌이’는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의 마스코트로, 한국인의 환대와 친절함을 상징하였다. ‘호돌이’는 한국을 활기차고 매력적인 여행지로 홍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동물로 알려진 작은 캥거루 모양을 한 ‘쿼카 (Quokka)’는 호주의 로트네스트 섬(Rottnest Island, Australia)의 상징이 되었다. ‘쿼카’와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로트네스트 섬을 찾고 소셜 미디어에서 ‘쿼카 셀카’가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적으로 로트네스트 섬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 성공한 기업의 브랜딩에도 동물이 활용된다. 월트 디즈니 회사의 상징인 ‘미키 마우스’는 아마도 브랜딩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동물 캐릭터일 것이다. 이 유쾌한 쥐 캐릭터는 디즈니의 글로벌 브랜드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마법, 재미, 가족 오락을 대표한다. 미국의 유명한 보험회사 애플랙 (Aflac)이 1999년에 도입한 ‘애플랙 오리 (Aflac Duck)’는 회사 이름을 꽥꽥거리는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향상해 애플랙을 누구나 다 아는 이름으로 만들었다. 사슴, 곰, 호랑이, 쿼카, 쥐, 오리 이외에 많은 동물 캐릭터는 지역과 기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 매력과 독창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동물 캐릭터가 브랜드와 지역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홍보하는 데 있어 강력한 도구임은 분명하다.
양경렬 나고야 상과대학 (Nagoya University of Commerce and Business)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