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포커 칠 때 심부름했죠.”
1990년대 말 IMF 경제위기 전에 증권회사를 다녔던 친구가 그때 직장생활이 어땠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선배들이 포커 치면 옆에서 음료나 담배를 갖다 주고 용돈 몇 푼 얻는 소위 ‘박카스’ 노릇을 한 기억만 난다고 했다. 그 시절 금융권 사람들이 포커를 세게 친다고 유명했는데, 당시 많은 직장인이 포커나 화투 등의 노름을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게 즐겼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방바닥에 앉아서 먹는 한옥을 개조한 단골 식당이 있었다. 닭볶음탕과 같이 시간이 좀 걸리는 요리가 주메뉴였는데, 점심에도 기다리며 놀라고 화투와 담요를 먼저 가져다주곤 했다. 저녁 그 집에서는 곳곳에서 화투와 포커판이 벌어졌다. 밤이 좀 깊어질 무렵이면 어디선가 ‘올인’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났다.
‘올인(All in)’은 2020년 이후 넷플릭스 드라마로는 최고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징어게임’ 시리즈의 프론트맨으로 나오는 이병헌이 2003년 출연한 드라마로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해진 용어이다. 도박, 특히 포커에서 가지고 있는 칩을 모두 거는 행위를 말한다. 영화 같은 데서 보면 플레이어가 테이블 위에서 자기 앞에 쌓인 칩들을 양쪽 손으로 쭉 딜러 앞으로 밀면서 굳이 입으로 말하지는 않고 눈빛으로 신호를 준다. 아주 좋은 패를 가지고 있다며 상대방을 겁주는 ‘블러핑’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걸 나는 ‘의지(意志)형 올인’이라고 한다. 내 뜻을 알아서 기라고 하면서, 기필코 이기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다.
결과를 알리는, 곧 ‘완료형’ 올인도 있다. 골프에서 내기하다가 더는 못하겠다고 할 때, ‘만세’를 부른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와 비슷하게 모든 돈을 다 넣어 잃어서 더 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올인’이다. 노름을 넘어서도 파산 상태가 되었을 때 ‘올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의지형과 완료형으로 쓸 때의 표정과 어투가 아주 다르다. 어떤 때는 발음까지 다르게 해서, 완료형으로 모두 잃었다고 할 때는 ‘오링’이라고 하기도 한다. ‘올인’을 일본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영어에서 완전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할 때는 흔히 ‘break’에서 파생된 ‘broke’를 써서 ‘I’m broke’식으로 말한다. 보통 무일푼이 된 상태를 나타내며 완료형 올인으로 쓰이는 그 ‘broke’가 의지형으로 반전을 일으키면서 미국 우정성에서 발행하는 기념우표로 등장한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군으로 참전했던 일본계 병사들을 기념하는 우표가 2021년 6월 3일 나왔다. 그 우표의 오른쪽 위편에 'Go for Broke'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2차대전 때 일본계 미국인으로만 구성한 미국 육군 442연대의 구호였다. 'broke'가 앞에서 얘기한 대로 '무일푼의', '땡전 한 푼 없는'과 같은 뜻이니, 그런 상태로 간다는 것이다. 곧 나중에 어찌 될 것 고려 안 하고,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전투하겠다는 의지형 올인의 표현이다.
일본이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폭격했다. 그 직후 일본에 선전포고한 미국 행정부는, 미국 본토의 일본인들을 적국에 도움을 주는 스파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내륙의 척박한 지역에 있는 수용소로 보내 감금했다. 그러면서 젊은 남자들은 미국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라며, 전선으로 보내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저질렀다.
당시 미군으로 간 일본 젊은 청년들은 문자 그대로 인생이 'broke' 상태였다. 어차피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니 무어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지원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1980년대의 레이건 시절에 미국은 일본계 미국인을 강제 수용한 것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사과했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난 게 아니라, 21세기 들어 오바마, 바이든도 연거푸 사과했다. 'Go for Broke'한 이들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실제 442연대는 인당 대비 가장 많은 훈장을 탄 부대라고 한다. 그만큼 큰 희생이 따르기도 했다. 한편으로 미국 정부로 봐서는 사과해서 'broke'하는 일은 절대 없으니 못 할 것도 없다.

우표에 보면 사선이 그어진 ‘FOREVER’란 단어가 보인다. 이는 'Forever® stamp'라고 해서, 요금이 바뀌어도 언제나 특급우편에 쓸 수 있는 우표를 말한다. 'Go for Broke'라는 구호를 외치며, 모든 것을 걸었던 반전으로 영원의 생명을 얻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 땅 곳곳에서 ‘올인’을 외치며 싸우는 이들이 있다. 지금은 의지형인데, 그들의 상당수는 곧 완료형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영원한 ‘forever’의 반전을 얻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