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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대치동의 고슴도치 엄마 이소담'을 그린 코미디언 이수지의 영상이 화제다. '인간 복사기'란 별명이 붙었던 코미디언들은 많지만, 이수지는 거기에 풍자라는 조미료를 확실히 쳤다. 자식을 영재라고 확신하면서, 어떻게든 입시에 도움이 된다면 나이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사교육으로 자식을 몰아붙이고,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 모습을 그렸다. 고급 패딩과 외제 차로 무장했지만, 자식의 라이드 시간을 맞추고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해서, 김밥으로 우악스럽게 끼니를 때운다. 이 영상이 히트하며 이수지가 입은 패딩의 판매가 떨어졌다니 의도치도 않았고, 상상도 하지 못한 반전이었으리라. 영상을 보면서 한때 서울 강남의 세 동네 엄마 유형을 가지고 유행했던 농담이 떠올랐다.
압구정동 엄마는 미국식 아침 식사를 아이에게 먹이고 등교를 시킨 후에 골프연습장에 가서 운동하고 명품점에 가서 쇼핑하고, 하교에 맞춰 도우미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어 애들 간식과 식사를 챙겨주라고 한다. 대치동 엄마는 아이에게 12첩 반상 아침으로 든든하게 머리를 깨워주는 식사를 주고, 애들이 등교하면 엄마끼리 모여서 선행학습 공부와 최근 학원 동향에 대해 토의하고, 역시 학습에 도움이 되고 체력을 길러줄 유기농 식사를 학원 가기 전에 주려고 준비한다. 잠원동 엄마들은 아침에 애에게 어제 먹던 것 챙겨 먹으라고 하고, 애가 학교에 가면 자신들은 한강공원에 나가 운동을 하고, 고속터미널 지하로 아이쇼핑을 하러 갔다가 학교가 파하는 시간에 맞춰 떡볶이나 튀김을 사서 집에 가서 아이와 함께 먹는다. 애들이 잘 모르는 걸 물어볼 때의 반응도 각각 다르다고 한다. 압구정동 엄마는 '유학 갈 거니까 신경 쓰지 마'라며 넘기고, 대치동 엄마는 선행학습 한 걸 가지고 스스로 가르치고, 잠원동 엄마는 '아빠한테 물어봐'라며 넘긴다고 한다.
'스카이 캐슬' 드라마가 숱한 패러디와 유행어를 양산하면서 인기를 끌 때, 위의 농담이 유행했다. 사실 그때 처음 나온 건 아니고, 2015년 전후로 나왔던 농담에 시류와 사건에 따라 계속 살이 덧붙여졌다. 드라마나 영화에 '학원 물'은 오랜 역사가 있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 중반에 '고교얄개'로부터 이른바 '하이틴' 물이 한국 영화계를 쥐락펴락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학원 물의 중심 소재는 남녀 청소년 간의 사랑이었다.
유감스럽게 갈수록 학원 물에서 애정보다는 치열한 경쟁이나 폭력을 다루는 비중이 계속 늘고 있다. 세계 어디나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특히 사회 전체의 복지 수준이 떨어지고 경쟁이 치열한 국가일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미국이 그 대표로 손꼽힌다. 입시 부정에 유명 배우를 포함하여 부호들이 엮여 들어가며 '미국판 스카이 캐슬'이란 사건이 터진 게 2019년인데,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대학입시를 가지고 논란이 해마다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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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우리 학교의 중심 사명입니다. 우리 교직원 일동은 모든 학생이 배움의 능력과 의지를 가졌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든 학생이 다양해지고 변화하는 세상에 책임감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탁월한 교육과 학습을 제공하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모든 학생이 학업, 사교, 심신 개발 측면에서 성공하는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존중하고 지원하며, 서로에게 높은 기대를 하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유지합니다.”
미국에서 아주 모범적인 마을로 손꼽히는 곳의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라고 <티핑 포인트>, <아웃라이어> 등의 저서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신작 <티핑 포인트의 설계자들>(비즈니스북스 펴냄, 2025)에서 소개한다. 교장 말씀 중 말콤 글래드웰이 볼드에 빨간색 색상으로 강조하는 부분을 표시했다. 학생들은 교장 선생님 말씀에 맞게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입시에 초점을 두고 맹렬하게 공부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교사들이 능력과 자세를 이르는 다음의 말도 덧붙였다.
“이 모든 것은 배움이 평생에 걸친 과정이며 우리 학교는 '가르치기 위해 다가가고, 다가가기 위해 가르치는' 곳이라는 우리의 믿음을 반영합니다.”
그 학교에 유명한 게 또 하나 있다.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자살률이 높다. 특히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여주며, 그 학교에서도 모범생으로 꼽히는 이들이 아까운 목숨을 버려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 분야에서는 유감스럽게 한국이 미국을 앞서고 있다고 한다. 사실 위의 교장 선생님 말씀을 읽으면서는 나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같이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걸 말콤 글래드웰이 예상했나 보다. 반전 장치를 하나 심어두고 그걸 바로 고백한다. 해당 고등학교의 이름을 말콤 글래드웰은 임의로 만든 소재지 이름을 따서 '포플러 그로브'라고 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좀 했다. 이건 포플러 그로브 고등학교 교장의 메시지가 아니라, 포플러 고등학교 교장의 메시지가 아닐, 포플러 그로브 초등학교 교장의 메시지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경쟁으로 몰아넣고, 대학 입학 하나에만 매달리게 하는 획일적인 모노 컬처(mono-culture)에 대한 경고를 이렇게 전한다. 전국 최고 성적의 모범 학교에서 자살률 높은 학교로의 반전도 충격적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고교 교장의 메시지라 했다가 초등학교 교장이라고 실토하며, 충격 효과를 끌어올리는 화룡점정을 완성했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