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붉은 청어와 죽은 고양이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붉은 청어와 죽은 고양이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5.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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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21대 대통령 선거는 최초의 기록을 하나 갖게 된다. 1948년 7월 초대 대통령을 국회에서 뽑은 이래 대통령 선출 제도는 간접선거와 직접선거를 오가며 변화가 있었으나, 1987년 이래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형식이 거의 40년에 걸쳐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정착되었다. 출마자 수는 왔다 갔다 했으나 아직 입후보자 등록이 끝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설지는 알 수 없다. 이제 두 달이 남은 상황에서 확정되지 않은 것들이 많은 상태에서 최초의 기록은 무엇일까? 대통령 선거일이다. 처음으로 6월에 펼쳐지는 대통령 선거이다.

유력 대선후보들의 사법 리스크가 일정대로 최초 6월 선거가 이루어지는 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선거일이 공고된 이후에 한 후보는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다른 이는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온 상태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로 넘겨졌다. 직접 후보는 아니지만 전전 대통령을 포괄적 뇌물을 수수했다면서 검찰이 기소했다. 파면되어 사상 초유로 6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만든 전 대통령은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과거 대통령들이 바로 미래 대통령이 될 이들까지 사법부에 의하여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형국이다. 이런 사법 연루 건들이 나오면서 대통령 선거 자체에 집중되어야 할 관심과 주의를 흩뜨리고 있다.

아주 중요한 일처럼 얘기하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쪽으로 유도하는 사물이나 행위들이 있다. 이를 비유하는 표현들로 세 가지가 잘 알려져 있다. 먼저 잡지 이름으로도 유명한 ‘red herring’이 있다. ‘붉은 청어’라는 뜻이다. 청어를 소금에 절여 훈제하면 붉게 된다는 데, 색상보다는 냄새가 지독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냥개들이 냄새를 따라서 토끼나 사냥감들을 쫓을 때, 강한 냄새가 나는 붉은 청어를 코에 들이대면 그들의 감각이 흐려진다. 지독한 청어 냄새를 이겨내고 원래의 사냥감 냄새를 쫓도록 만드는 의도였다. 곧 붉은 청어는 사냥개의 훈련 보조재였다. 몇몇 추리소설 작가들이 그런 장치를 내걸면서, 주의를 돌리는 도구의 표현으로 정착되었다. 실제로 사냥개에 쫓기는 범죄자가 붉은 청어를 가지고 다니거나, 옷 이곳저곳에 청어를 문지르고 도망을 가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주의를 돌리게 하는 건 같은데, 다른 짐승을 소재로 쓴 표현도 있다. 주인공은 고양이인데, ‘죽은 고양이(dead cat)’이다. 영국의 전 수상으로 항상 머리가 헝클어진 상태로 있는 보리스 존슨이 써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만찬 초대를 받아 갔는데, 테이블에 누군가가 죽은 고양이를 올려놓았다. 놀란 참석자들이 죽은 고양이가 왜 거기에 있는지, 어쩌다가 죽었는지, 누구 것인지 등 고양이에 관한 얘기만 하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새까맣게 타버린 칠면조 요리가 담긴 냄비의 뚜껑조차 열지 못하고 만찬 시간이 지나버렸다. 본질을 보거나 얘기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소재를 던지는 홍보기법을 아예 ‘죽은 고양이 전략(dead cat strategy)’이라고도 한다.

영화에서 흔히 쓰는 ‘맥거핀(MacGuffin)’도 비슷하다. 뭔가 중요한 듯이 나타나고, 관객들이 촉각을 세우게 만들지만, 해결책이나 결말과는 별 상관 없이 어디선가 증발하여 버린다. <미션 임파서블> 3에 보면 ‘토끼 발(rabbit’s foot)’을 놓고 싸우는데, 정작 토끼 발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반전(反轉) 영화의 대표로 손꼽히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도 일종의 맥거핀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이저 소제를 두고 영화에서 떠버리(Verbal)로 나오는 케빈 스페이시가 이런 말을 한다.

“카이저 소제가 누구냐고요? 터키인이라고도 하고, 누구는 그의 아버지는 독일 사람이라고도 하죠. 사실 아무도 그가 진짜 살아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죠. 직접 봤다는 이도 없고, 그의 바로 밑에서 일했다는 이도 없어요. 그런데 고바야시가 말한 대로 누구나 카이저 소제를 위해 일할 수 있어요. 알 수 없는 일이죠. 그게 바로 그의 힘이에요. 악마의 최고 마력은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믿게 만드는 거죠. 그러면서 휙 사라지고요.”

허츠 렌터카 등 미국 거대 기업들의 광고 모델로도 혁혁한 활동을 펼쳤던 미식축구 스타 출신의 오 제이 심슨(O.J. Simpson)은 그의 전력보다 살해당한 전처와 관련한 심슨 사건으로 더욱 유명하다. 피의자 심슨의 변호인단 일원으로 참가한 이가, 자신이 담당했던 사건 중에 가장 증거가 많다고 이런 비유를 했다.

“큰 그릇에 듬뿍 담긴 스파게티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면 어쩌겠는가.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못 먹고, 모두 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몇몇 증거물을 맨손으로 만졌다. 수집 날짜 기록이 지연된 증거물들이 있다. 증거물을 채취한 경찰 중 한 명이 인종차별주의자이고,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거짓말을 했다. 이런 게 변호인이 얘기한 ‘바퀴벌레’들이었다. 특히 위증으로 몰아붙이고, 체포 장면이 반복하여 노출되면서 흑백 갈등이 전면에 대두되었다. 거짓말은 사건과 직접 연관이 없는, ‘자신은 지난 5년 동안에 흑인을 비하하는 욕설을 한 적이 없다’라는 말이었다. 바퀴벌레인지 아닌지는 누가 결정하나. 바퀴벌레보다 더한 죽은 고양이가 나와도 아무 상관없다고 하면 넘어갈 수도 있다.

아는 변호사 하나가 검찰의 가장 큰 권력이 무언지 아느냐 물었다. 그의 답인 즉 ‘수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반전 아닌가. 누구를 수사하는 게 아니라, 수사하지 않는 게 권력이라니. 찬찬히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범죄가 있어도 조용히 넘어가도록 묻고 가는 데서 진짜 힘이 발현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붉은 청어나 테이블 위의 죽은 고양이나, 맥거핀에 쏠린 상태에서 말이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

출처 : 매드타임스(MADTimes)(https://www.madtim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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