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윌리엄 아덴(William Arden), 제인 리(Jane Leigh), 오스카 엘지(Oscar Elgee)'
어떤 사람들을 이렇게 줄지어 적었는지 알 듯 말 듯하다. '윌리엄, 제인, 오스카'라는 앞에 오는 이름, 영어로 'first name'만을 모아 보면 뭔가 공통점이 보일 듯도 하다. 뒤에 오는 성(姓), 영어로 'surname'을 바꾸어 보면 아주 친숙한 이름들이 튀어나온다. 2023년 초에 오길비(Ogilvy) 계통의 포르투갈 광고 회사인 비에이알 오길비(BAR Ogilvy)에서 선보인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영상에 친숙한 성씨로 위의 이름을 가진 이들의 초상이 나오고, 다른 두 명의 인사까지 덧붙여 공통점을 물어본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프란츠 카프카(Frantz Kafka),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마지막 인물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한국에서는 지명도가 좀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포르투갈어로 작품을 쓴 최고의 시인으로 꼽히며, 20세기 문학사에서도 아주 중요하게 꼽히는 인물이다. 포르투갈이란 국적을 고려하여 들어간 인물로 보이기는 한다. 어쨌든 위대한 문학가들의 이름들임을 누구나 알 수 있겠는데, 영상에서 얘기하는 공통점은 다르다.
'모두 아버지의 성씨를 썼다(They all use their fathers' surname).'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을 두고 그렇게 써왔던 것 아닌가. 영상의 자막에 나오는 것처럼, 서구인들 대부분이 그러하고, 자녀들도 그럴 것이며, 자녀들의 자손까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영상의 표현을 옮기면 '디폴트(default)'로 아버지의 성씨를 따라 한다. 여기서 너무나 단순한 반전의 질문을 던진다.
'왜(WHY)?'
아주 옛날에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족이 형성되는 모계사회였다는 말을 들었는데, 언제부터 성씨는 아버지를 따르게 된 것일까? 기원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영상은 '사회적 통념(social construct)'이란 표현을 썼다. 꼭 따라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자식이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을 넘어서, 결혼하면서 여성이 남성의 성으로 바꾸는 건 더욱 이상하지 않은가. 심하게는 기혼 여성을 남편이나 그 집안의 소유물로 여기는 데서 유래한다고도 한다. 꼭 서구만의 전통도 아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보면 결혼 후에도 자기의 성씨를 그대로 유지하는데, 일본만 해도 민법에서 결혼한 부부는 성이 같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 '부부동성(夫婦同姓)'을 따를 때 90% 이상이 남편의 성을 쓴다.
미 육군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 나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여군 하나가 같은 부대의 동료와 결혼했다. 우리도 그렇지만 가족 관련 서류를 바꾸느라 괴로워했다. 여군 친구는 남자가 할 필요가 없는 과정을 거쳤다. 군복에 붙은 이름표를 모두 바꾸어야 했다. 보통 미군 이름표에는 성씨와 이름의 첫 알파벳만 표시되는데, 성씨가 남편이 된 친구를 따라 바뀌었으니 어쩌겠는가. 결혼 사실을 모르고 그를 우리 사무실에서 본 이가, 그전처럼 계급에 이어 성씨를 불렀다가 바뀐 이름표를 보고 깜짝 놀라는 일들이 몇 차례 있었다. '박 병장'이라고 불렀는데, '이 병장'이 되어 버린 식이다.
페미니즘에 앞장서거나 의식이 있는 여성 중에 자기 성씨를 결혼 후에도 유지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다. 약간은 온건하게 중간 이름으로 원래 자기 집안의 성을 붙이기도 한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냈고 대통령 후보로도 나섰던 힐러리 로드햄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이 그 예이다.
한국에서는 어머니의 성을 함께 적는 이들이 있기도 하다. 연세대 명예교수이자 저술가로 유명한 조한혜정 교수가 내게는 가장 먼저 떠오른다. 원래의 '조'씨 성에 어머니의 성인 '한'을 붙여 1997년에 '조한'으로 개명했다. 그 행동을 삐딱하게 본 어느 노인이 그 딸이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면 아버지 성을 따라서 호적에 기재된 '전'에 '조한'을 붙여서 성이 '전조한'이 되어야 하느냐고 개탄반 농담반으로 말했었다. 노인에게 알려 드리고 싶다. 조한혜정 부부는 아들만 하나 뒀다. 그 아들이1990년대 말에 서울대에 조기 입학하고 VJ로도 활동하여 유명했는데, 아버지의 '전'과 어머니 성씨 중 '한'을 합쳐서 '전한'을 자기 성으로 삼았다.

처음에 얘기한 포르투갈의 영상으로 돌아오자. 비에이알 오길비에서 펭귄랜덤하우스 출판사를 위하여 기획한 프로그램이었다. 펭귄랜덤하우스에서는 2023년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유명 작가들의 이름을 모친들 성을 따라 바꾸어 적은 책들을 한정판으로 냈다. 기념일에도 맞고, 당연히 아버지, 곧 남성의 성을 따라야 한다는 화석처럼 자리 잡은 관습에 반전을 제기한 아이디어였다. 책들이 레어템으로 인기를 끈 건 덤이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