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드타임스 최영호 기자] 1977년, 인류는 지구의 존재를 알리는 인사말과 함께 각국의 대표 음악을 담은 ‘보이저 골든 레코드(Voyager Golden Record)’를 우주로 보냈다. 지구 외 문명과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이 음반에는 바흐, 베토벤, 스트라빈스키 등 세계 각지의 음악이 수록됐지만,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명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The Blue Danube)’는 빠져 있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우주와 왈츠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이 곡의 누락은 오랜 시간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48년이 흐른 지금, 오스트리아 빈은 이 음악을 마침내 실제로 우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2025년 5월 31일, 빈 응용미술관(MAK)에서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Wiener Symphoniker)의 연주 아래 ‘푸른 도나우’가 연주됐다. 지휘는 체코 출신의 젊은 거장 페트르 포펠카(Petr Popelka)가 맡았다. 이날의 연주는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었다. 공연과 동시에, 유럽우주국(ESA)이 보유한 스페인 카세레스 지역의 심우주 안테나(Deep Space Antenna 2)를 통해 음악이 우주를 향해 실시간으로 송출된 것이다.


‘Waltz into Space’라는 이름이 붙은 이번 프로젝트는 비엔나관광청(Vienna Tourist Board)과 오스트리아 광고회사 Jung von Matt DONAU가 공동 기획했으며, ESA가 기술 파트너로 참여했다. 음악은 약 23시간 3분 만에 보이저 1호가 1977년에 도달했던 거리보다 먼 곳까지 도달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멀리 전송된 왈츠가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기술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 시민들의 참여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됐다. 90여 개국에서 1만 3천여 명이 '스페이스노트 앰배서더(SpaceNote Ambassador)'로 참여했으며, 이들은 악보의 각 음표를 한 사람씩 맡아 하나의 완성된 곡을 함께 구성했다. 그중에는 오스트리아 대통령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Alexander Van der Bellen)을 비롯해 예술가, 과학자, 음악인, 일반 시민들이 포함됐다. 이들의 이름은 각 음표에 함께 담겨 우주로 전송되었고, 음악과 함께 별들 사이를 떠돌게 된다.


비엔나관광청의 대표 노르베르트 케트너(Norbert Kettner)는 "빈은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도시다. 이번 프로젝트는 음악과 과학, 그리고 전 세계 시민들의 연대가 어우러진 상징적인 순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기획을 맡은 Jung von Matt DONAU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이크 나기(Mike Nagy)는 “우주 탐사가 점점 더 상업화되는 시대에 기술뿐 아니라 인류의 문화와 감성을 함께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이제야 비로소 우주에 닿았다. 빈의 음악적 유산이자 인류의 감성을 담은 이 왈츠는,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시작된 문화의 메시지가 광활한 우주로 퍼져 나가는 상징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