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칼로의 눈썹과 고흐의 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칼로의 눈썹과 고흐의 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08.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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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자신의 화실을 겸한 정원 같기도 하고, 멕시코 고급 주택가의 골목 같은 데서 앞머리에 화려한 붉은 꽃을 장식으로 꽂은 프리다 칼로처럼 생긴 여성이 캔버스에 붓칠하고 있다. 그를 향해 사람들이 오는 듯하고, 모습이 보이기 전에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얘기할게(Let me do the talking)".

뭔가 꺼내기 힘든 말이 있나 보다. 조금 전 목소리의 주인공인 듯한 남성은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그림을 들고는 꾸며낸, 옛날 미국식 표현으로는 '팬암 웃음(Pan Am Smile)'을 짓고 있다. '팬암'이란 이제는 없어진 기업이지만, 한때 세계 최고의 항공사가 있었다. 항공사 승무원들이 승객에게 져 보이는 가짜 미소에, 당시 대표 항공사였던 '팬암'을 붙여서 만들어진 표현이다. 그림을 든 남성 옆의 여성이 부러 밝고 반가운 티를 내면서 프리다를 불렀다.

자신이 작업하고 있는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건성으로 '어쩐 일이에요?'라고 묻는 칼로에게 여성이 간단한 얘기 전하러 들렀다고 한다. 당연히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 고객(client)이 그림을 아주 좋아했다(loved)고 과장되게 강조하는 게 심상치 않다. 역시나 아주 사소하게 걸리는 게 있다고 한다. 바로 얼굴의 이마(forehead) 부분이라고 한다. "이마요?"라고 묻는 칼로에게 남성이 역시나 억지 미소와 함께 대답하면서, 이마보다 아래 자신의 양 눈썹을 검지로 연결하며 긋는 제스처를 한다.

"고객 중 실무자 친구가 (눈썹을 긋는 제스처와 함께) 말이 나올 것 같고, 여기에만 관심이 쏠릴 것 같다고 하네요."

프리다 칼로의 트레이드 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이어진, 1980년대 말 한국에서 인기 있던 코미디 '쓰리랑 부부'에서 코미디언 김미화 씨가 하고 나온 듯한 눈썹에 대한 불만을 전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 칼로에게 여성이 그 부분은 어떻게 무마시키겠다(push back)고 하면서 정말 심각한 문제를 꺼낸다. 회사의 CMO가 자기 남편에게 보여줬는데, 그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영상에서는 식사하면서 힐끗 칼로의 자화상을 보고는 "맘에 안 들어. 비호감이야(unrelatable)"라고 일축해 버린다.

앞에서 나온 'client'라는 용어야 여러 업종에서 쓸 수 있지만, 불쑥 등장한 CMO라는 존재가 이 영상물에서 어떤 걸 이야기하려는 건지 알려준다. 이어 며칠 후로 보이는 시점에 원래의 남녀에 두 명의 남녀가 합세하여 네 명이 프리다 칼로에게 나타난다. 첫 번째 여성이 고객에게 자화상이라는 사실을 인정케 하여 문제를 잘 풀어갔다고 말한다. 역시나 고객이라는 이가 시원하게 그대로 받아들인 건 아니다. 아주 사소하게(?) 수정할 부분이 나온다. 자화상 속의 칼로 앞에 보이는 원숭이의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원숭이는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좀 더 크리에이티브하고 의미가 있으며, 방향성이 있고, 함께 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등의 표현들과 함께 결국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강아지로 교체하는 걸 고려하라고 한다. "고려해 보라고?"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프리다 칼로에게 "알았지요? 좋아요."라고 툭 던지고는 일행은 떠난다.

광고 시안을 광고주에게 제시하면서 툭하면 벌어지는 장면들을 연상시킨다. 이 영상에 프리다 칼로와 함께 빈센트 반 고흐가 등장했다.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Stary night)'은 제목은 마음에 들지만, 밝게 낮으로 해주면 좋겠다는 코멘트로부터 시작하여, 집단심층면접과 같은 형태로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조사를 벌인다. 이어 인플루언서로 이름이 있다는 성직자를 집어넣으라고 한다. 성직자는 자신이 창작자라며 자신의 모습은 직접 그려 넣겠다고 한다. 종국에는 바깥의 초보 화가를 시켜 가로로 그린 작품을 세로로 세우기도 한다. 원래 고흐의 작품 안에 들었던 요소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담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기가 막힌 고흐가 "그렇게 한 작품을 공개한다면 내 귀를 잘라버릴 거요"라며, 그가 벌인 유명한 사건을 연상시키는 말을 내뱉는다. 이어 고흐와 칼로의 이 어처구니없는 소동들을 정리하는 자막이 한 줄씩 연달아 뜬다.

It's hard to make museum-worthy art(미술관에 걸릴 만한 작품 만들기 힘들죠).

It's harder to make museum-worthy art(미술관에 걸릴 만한 광고 만들기는 더 힘들어요).

이어서 미국의 독립광고제작자협회(Association of Independent Commercial Producers)에서 2024년 3월에 개최하는 공모전에 출품하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그러면서 수상을 하게 되면 현대미술관(MoMA)의 아카이브에 작품이 들어갈 거라고 한다.

광고회사 내의 상사들과 광고주의 입김으로, 결국 산으로 가버리는 개 사료 광고물을 풍자했던 일본의 영상물을 생각나게 한다. 미국 독립광고제작협회의 영상은 직접 광고물이 아닌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화가들인 고흐와 칼로의 대표작들을 소재로 삼으며, 광고물을 두고 벌어지는 디테일들까지 비유적으로 깨알같이 담았다. 화가들보다 광고주 상대를 담당하며, 광고회사 스태프들에게 얘기를 전하는 AE를 연상케 하는 이들의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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