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고요함을 선거의 소음 속에서 침묵으로 부르짖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고요함을 선거의 소음 속에서 침묵으로 부르짖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11.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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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세계 양대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과 남자 축구 월드컵이 열려 짝수 해에 광고계는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아시아에서는 아시안게임이 열려서 기름을 붓기도 한다. 미국에는 짝수 해마다 선거가 있어서 광고계의 대목이 된다. 특히 4년마다 오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는 중간선거보다 더 큰 광고 시장이 열린다. 한편으로는 너무 과열되다 보니 넘쳐나는 정치 광고에 염증을 내는 이들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선거 때마다 사람들 좀 모인다는 곳이면 유세 트럭에서 후보의 로고송에 그에 맞춘 듯 아닌 듯싶은 운동원들의 춤사위가 어우러져, 지하는 후보가 하는 거라도 짜증이 나는 경우가 꽤 많다. 어떤 때는 후보 자신이 방송 영상 광고에 나와서 춤을 추기도 하는데, 그 역시 어울리지 않아 괜히 보는 이가 낯 뜨거워지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아서 차라리 히트를 한 선거 노래와 춤이 있다. 바로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Doc와 춤을’ 가지고 만든 ‘DJ와 춤을’이었다. 70대 노인 셋이라 오히려 경계가 허물어지고 차별화된 측면이 있었다.

개표 방송에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려고 그러는지 과장된 사회자와 패널들의 목소리에, 최근에는 현란한 시각 효과와 음악이 소음 데시벨이나 짜증 측면에서 선거운동 때를 방불케 하기도 한다. 올해 미국 대선이야 사전 예상과는 달리 꽤 일찍 판세가 트럼프 쪽으로 기울어져 아무리 개표방송 진행자들이 애를 써도 긴장감이 덜했다. 그런데 지난 2020년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결은 그렇지 않았다. 집계가 진행되는 주마다 개표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도 ‘아직 결과 불투명’이란 식의 ‘too early to call’이라는 상황 문자가 줄을 이었다. 이런 긴박한 CNN 개표방송의 후원 기업이란 뜻의 ‘Brought to you by’ 다음에 오는 리스트에 수면과 명상을 위한 앱인 캄(Calm)이 있었다. 가장 시끄럽고 복잡한 프로그램에 하는 후원 자체로 그와는 정반대의 환경을 조성하라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했다.

더불어 캄 앱에서는 30초짜리 광고도 집행하고 이를 당시의 트위터를 비롯한 SNS 채널로 내보냈다. ‘30초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Do nothing for 30 seconds)’라는 자막과 함께 30초 동안 잎들이 무성한 나무들이 들어찬 숲에 비가 내리는 광경이 빗소리와 함께 광고를 채우고 있었다. 또한 캄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8시간 동안 숲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송출했다. 마치 ASMR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충분히 화제가 되긴 했다. 평소 캄이 날린 트윗에 대한 멘션이 500개 정도에 그친 데 반해서, 이 장면이 나온 후에는 9,700개 이상으로 20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2020년 CNN 개표방송 때 방영된 Calm의 ‘비 내리는 숲속’ 광고
2020년 CNN 개표방송 때 방영된 Calm의 ‘비 내리는 숲속’ 광고
2020년 개표방송 때 Calm의 후원을 알리는 화면
2020년 개표방송 때 Calm의 후원을 알리는 화면

이번 대선에서도 캄에서는 지난번과 비슷한 광고를 내보냈다. 바라보면 그냥 멍해질 약간 사이키델릭한 파란 색 화면을 30초 동안 내보냈다. 극도로 제한된 메시지는 자막으로 처리했다.

‘우리는 여러분에게 30초의 정적(靜寂)을 드리기 위하여 이 광고 시간을 샀습니다(We bought this ad space to give you 30 seconds of silence).’

2초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더 짤막한 글귀가 나온다.

‘네, 그냥 정적요(Yep, just silence).’

5초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에 겸연쩍은 듯이 한 마디 더한다. 정치 광고나 방송에 지친 이들이 당연히 고마워할 것이란 자신감이 바탕에 깔렸다.

‘천만에요(You’re welcome).’

영어로 ‘quiet, silent, calm’은 ‘조용하다’라는 비슷한 뜻을 가지나 약간의 어감 차이가 있다. ‘quiet’는 조용하기는 하나 그래도 약간 소리가 나는 상태이고 완전한 침묵이 ‘silent’이다. ‘calm’은 고요하다고 해야 할까, 소리 이상으로 에워싼 주변까지 차분하게 아우른다. 예전에 조선을 보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할 때, ‘Land of Morning Calm’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대한항공에서는 아직도 ‘Morning Calm’을 여러 방면으로 자신들 만의 마케팅 표현으로 쓰고 있다. 그런 게 ‘Calm’이다. 인간이 벌일 수 있는 가장 시끄럽고 어지러운 상황에서 두 차례 연속하여 반전의 광고를 펼친 앱이, 많은 사람에게 ‘고요(calm)’하고 평안한 상태를 제공해 주기 바란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서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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