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처음 다니던 회사를 퇴직한 후에, 비슷한 형편이었던 친구 하나와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다. 둘이 이십일 넘게 같이 다니다가, 나의 옛 상사를 포함한 출장팀과 내가 합류하면서 헤어졌다. 그 친구와 헤어져 혼자 다빈치 공항으로 새벽 기차를 타고 갔다. 마침,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어서 출장팀은 하루를 촬영지 헌팅 겸 관광 일정으로 빼서 함께 다녔다. 이탈리아에서 건축학 박사 학위를 막 마친 한국인 가이드까지 고용해서, 제대로 건물과 유적지 안내를 받으며 다닐 수 있었다.
로마 중앙역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에게는 ‘종착역’이라고도 알려 있고 같은 이름의 영화제목까지 있는 테르미니에서 남쪽으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로마세계박람회(EUR: Esposizione Universale Roma)를 위해 조성된 신시가지 건축 구역에 갔다. 가이드가 건물들을 가리키며 ‘파시스트 건축 양식’의 대표라고 했다. 워낙 건축에 문외한이었던지라 그에게 실제 건축계에서 ‘파시스트 양식’이란 용어를 쓰냐고 물었다. 그가 그렇다면서 친절하게 다음의 주요한 특징을 들어 설명을 해줬다.
- 일반적으로 매우 크고 둥글지 않은 날카로운 모서리
- 좌우 대칭의 통일된 이미지
- 크기를 통해 의도적으로 경외와 위협의 감각을 전달
- 장식 없이 단순미학 추구
가이드 말로 한국에도 그런 양식의 건물이 많다고 했다. 집단으로 가장 많이 그런 형식의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나의 모교인 서울대학교의 관악 캠퍼스라고 했다. 어떤 형태를 말하는 것인지 이해가 바로 되었다. 똑같은 모양과 규격의 건물들이 번호로만 구분되어 배치되어 있었고, 대학본부와 중앙도서관은 웅장함만을 추구하며 위압적인 모양이었다. ‘일사불란’, ‘총화단결’의 구호가 형상화에 그 대열에서 이탈하려는 자에게는 일말의 관용도 취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새겨져 있었다. 시대를, 엄밀하게는 당시 권력자의 의중과 지향이 반영된 건축이었다. 사실 건물에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사회 곳곳이 그랬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당시 사회의 일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77년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에서 발간한 <여자 고등학교용 학교 교련 교범>에서는 “보폭이란 행진하고 있는 사람의 앞의 발뒤축에서부터 뒤의 발뒤축까지의 거리”를 말하며 “바른걸음일 때의 보폭은 76㎝, 옆걸음과 뒷걸음의 보폭은 30㎝, 반걸음은 38㎝”라면서 걸음걸이 하나도 절도와 각도를 맞추어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강조했다. 교련 검열에서 강조된 것은 절대시 된 집단적 질서, 균질화된 개인성, 위계질서에 대한 반발 없는 복종, 그리고 적에 대한 강한 저항심 등이었다.
- 대한민국 재향 군인회, 『여자 고등학교용 학교 교련 교범』, 1977, 15쪽
- 김은실, 「한국 근대화 프로젝트의 논리와 가부장성」, 『우리 안의 파시즘』, 삼인, 2002, 119쪽 : 『한국 여성 문화사』 2, 숙명 여자 대학교 출판부, 2005, 278쪽 재인용.
보폭의 정의부터 걸음의 방식 하나하나마다 길이가 규정되어 있고, 모두 그에 맞춰 줄을 맞춰 일사불란(一絲不亂)해야 한다고 강제 당했다. 예전 다녔던 광고 회사의 사장님 한 분은 ‘일사불란’이란 말을 아주 싫어하셨다. 시킨다고 그대로 바로 따라 해서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조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배나 상사에게라도 대들고, 다른 소리를 내라고 강조하셨다. 사실 광고하는 사람들이 좀 삐딱할 필요는 있다. 광고 회사의 조직 내부에서는 조직도가 좀 삐뚤삐뚤하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최근 파시스트 양식이 적용되는 공간을 파괴한 반전을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만났다.
네덜란드에서 나온 토니스 초코론리(Tony’s Chocolonely)라는 초콜릿이다. 이 초콜릿은 사각형 모양으로 일정하게 나뉘어 있는 보통 판 초콜릿과 다르다. 토니스 초코론리의 절단선은 제멋대로 그어진 것 같고, 그래서 다양한 모양의 조각들로 나누어져 있다. 설명을 들어보면 초콜릿의 주요 생산국들인 적도기니, 아이보리코스트, 가나, 토고, 나이지리아, 카메룬과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도가 들어 있다고 한다. 불공평한 노동 착취가 심한 국가들을 고발하는 의미에서 집어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각들을 절단선에 따라 자르면 크기가 제각각인데, 초콜릿 산업의 불공평한 이익 구조를 알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사불란한 구도를 깬 반전이 산업의 불공정, 불평등함을 알리는 도구가 되었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