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 말걸기] 목숨보다 비싼 한 모금

[광고에 말걸기] 목숨보다 비싼 한 모금

  • 이현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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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아르투아 광고 캠페인​

​스텔라 아르투아(Stella Artois)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이다. 소설 <별>의 작가 알퐁스 도데의 고향이기도 한 남프랑스의 프로방스가 이 세계적인 술의 요람이다. 스텔라는 별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우연의 일치가 아닐 지도 모르겠다. 고흐가 <해바라기>, <황색의 집>, <아를 공원> 등을 여기서 그렸고 세잔이 <생트 빅투아르 산>, <마르세유 항구>를 이 땅에서 낳았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스텔라 아르투아의 산실은 벨기에의 뢰벤(Leuven)이다. 1366년 벨기에의 뢰벤 지방에서 ‘덴 호른(Den Horen)’이라는 이름의 맥주공장이 설립된 것이 이 맥주의 탄생이었다.

​관악기 호른으로 상징되던 이 작은 맥주 브랜드는 뢰벤이라는 영락한 시골마을을 일약 관광명소로 도약하게 만든다. 이 도시의 유명세에는 뢰벤 대학교도 한몫한다. 이 학교는 덴 호른과 자매결연을 하고 아예 맥주 제조법을 수업에서 가르칠 정도였다.

스텔라 아르투아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466년에 이르러서이다. 6백 50여 개의 업체가 공동으로 명의를 사용하기로 했는데 그 브랜드 네임 중의 하나가 스텔라 아르투아였다.

​그러나 이때 설립된 최초의 아르투아 공장은 1948년 1차 세계대전 중에 포격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공장을 새로 옮겨지었는데 이 사건은 지금도 벨기에의 국가적인 기념사업으로 손꼽힌다.


1708년 6월 13일 세바스찬 아르투아(Sebastian Artois)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 덴 호른의 대표(Master Brewer)로 추대되는 영예를 안게 된다. 이로써 아르투아 가문은 맥주의 명가로 자리 잡게 된다.

아르투아 맥주의 원료는 탄생 당시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지하 깊은 암반에서 길어 올린 순수한 물과 몰트, 향기로운 호프, 비옥한 뢰벤의 흙이 길러낸 보리와 잘 숙성된 효모는 와인의 맛에 오랜 세월 길들여진 프랑스인을 사로잡을 만큼 독특한 맛의 원천이 되고 있다.

스텔라 아르투아메모리얼 굿즈
스텔라 아르투아메모리얼 굿즈

진짜 맥주는 이렇게 마시는 거야!​

맛으로도 유럽의 미식가들을 매료시킨 이 브랜드는 광고로 또 한 번 세계인의 눈길을 홀렸다. 스텔라 아르투아 광고는 그만큼 맥주 광고의 기본을 파괴한 광고로 정평이 높다.

그래서 칸, 클리오 등의 국제광고제에서 연거푸 전파 광고와 인쇄광고 부문의 정상 자리에 우뚝 서는 기염을 토했다. 칸 광고제를 참관한 사람이라면 스텔라 맥주 광고가 뿜어내는 크리에이티브의 매력에 한동안 혼이 나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먼저 포스터 작품을 몇 편 보자. 얼핏 감이 안 잡힐 정도로 난해한 광고다. 비주얼이라야 고작 전자기타, 스쿠터 헤드, 자동차 보닛, 의자 아니면 테이블, 여자의 하이힐 등이다.

또 있다. 후속 광고에는 피아노, 전화기, 토속적인 가면, 큐브 스타일의 장식 등에 남아있는 병뚜껑과 긁힌 흔적도 보인다. 그런데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때깔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비싼 물건도 맥주의 맛엔 비할 수 없다는 능청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그 소품들 한편에 툭 떨어져 있는 맥주병 뚜껑이랑, 자연스레 시선이 이어지는 곳에 보이는 긁힌 자국이다.​

‘인마, 진짜 맛있는 맥주는 이렇게 대충 따서 마시는 거야’라며 낄낄거리는 듯하다. 긁힌 자국이 병뚜껑의 소행이란 걸 굳이 설명하면 독자를 무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라고 왜 이런 생각을 못 했겠는가? 이런 단순무식은 오히려 성질 급하기로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냄비족’들의 일상 아니었던가? 우리가 애써 안 그런 척 고상을 떨면서 좀 더 우아한 해법을 찾느라 낑낑대는 동안에 그들이 먼저 기습적으로 표현에 써먹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세상에서 제일 값나가는 맥주, 천금을 주어도 바꾸고 싶지 않은 맛. 수백 마디 말을 사진 한 컷으로 팍 죽여 버리는 광고들이다. 광고마다 공통의 슬로건 ‘Reassuringly Expensive’라는 말이 사족처럼 붙어 있다.​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값이 나가는 브랜드라는 자신감 아니겠는가? 칸은 이 광고를 인쇄광고 그랑프리로 결정하는 데 10분 이상을 소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나 비싼, 너무나 오만한 광고

‘세상에서 가장 비싼’ 맥주 브랜드의 자만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오만한 이름값을 확인시켜주는 악역이 하나 등장한다. 그 사나이는 세 편의 광고 연작에서 돈키호테에 가까운 무모한 실행력으로 한 병의 스텔라 아르투아와,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값진 물건들을 간단히 바꿔치워 버린다.

위용 당당한 여객기 한 대가 이 맥주와 거래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 하찮은 물건으로 전락해 버리는가 하면, 거대한 공장이 교환의 제물로 바쳐진다. 다른 광고에선 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건설 예정지가 스텔라와 교환될 운명에 처한다. 과장도 분수가 있지 현실에선 도무지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부조리 광고의 전형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거래를 마치 서부영화의 갱처럼 성사시키는 무모한 카우보이의 모습은 광고에서 이미 익숙한 서사구조를 드러낸다. ‘돌아온 영웅’ 편을 잠깐 살펴보자.

전쟁에서 부상당한 아들이 친구의 도움으로 집에 돌아온다. 아버지는 아들의 생명을 구해 준 친구에게 와인을 부어주며 감사를 표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스텔라 아르투아 한 잔을 간청하자 아버지는 냉정하게 거절한다는 비장한 코미디다.

또 한 편의 영상광고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슬퍼하는 아들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유언으로 스텔라 아르투아 맥주 한 잔을 주문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맥주를 사 들고 오던 아들은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조금씩 다 마셔 버리고 만다. 칸 국제광고제 그랑프리 수상작의 줄거리다.

"빙상의 사제" 편도 선을 넘는다. 얼음판에서 스케이팅을 즐기는 사제에게 뇌물을 주고 스텔라 맥주를 주문한 신부. 사제는 눈보라와 폭설을 뚫고 임무를 수행하다 얼음 구멍으로 빠지면서 맥주병을 빠뜨리고 만다. 혼비백산해서 달려간 신부는 가까스로 살아나온 그에게 다시 눈짓으로 입수를 강요한다. 맥주병을 건져내라는 명령이었다. '목숨보다 비싼 한 모금'이라는 콘셉트에 집중하는 비정하기까지 한 영상이다.


이렇게 세상의 그 무엇과도 맞바꾸고 싶지 않은 비싼 맥주. 이 대단한 술을 쉽사리 아무 데서나 내놓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이 광고는 뜻풀이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산산조각이 나서 나동그라진 양주잔과 흉물스럽게 녹아내린 촛대는 또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한 소품이란 말인가. 상상력으로 해독을 하기에는 의미작용의 구조가 너무 모호하다.


기표에 내포되어 있는 기의는 수용자의 참여로 인해 이차적인 기표로 재생산되고 있다. 광고 메시지는 송신자의 의도만으로 의미가 구비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광고이다.

​이 광고의 모호성은 수용자들의 채워 넣기(fill-in) 또는 해석에 의해서만 완성된 의미로 거듭난다. 몇몇 사람들의 기지와 상상력을 빌려서 이 난해한 광고 표현의 의미를 해독해 보기로 한다.

​이 맥주 한 잔을 먹기 위해서라면 최고의 맛이 들어 있던 와인 잔도 미련 없이 집어던지라는 엄포가 아닐까? 허접한 술로 흥청대던 파티가 끝나고 모든 술이 동난 뒤에야 진짜 맥주인 스텔라 아르투아 한 방울을 마실 수 있게 된다는 얘기로 귀결된다.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면 녹아내린 촛농은 이 브랜드의 도도함을 상징하는 기표이다.


무수한 시간을 인내하면서 기다려서야 비로소 당신의 목마른 입술을 축일 수 있다는 오만한 약속이 비주얼 메시지로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현우 전직 카피라이터 / 동의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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