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Japan] 축소지향 네이밍

[Trend Japan] 축소지향 네이밍

  • 양경렬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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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은 ‘축소지향’이란 단어를 통해 일본을 정의하고 있다. 전자 제품을 시작으로 산업 현장, 생필품, 문구, 완구 등 많은 부분에서 작게 만드는 기술과 문화가 발달하여 있다. 이런 축소지향은 제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언어, 시, 문학 같은 문화에도 전반적으로 퍼져 있다. 문화와 의식까지, 그들의 삶 전체에 축소지향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Trend from Tokyo] 코로나가 만들어낸 축소지향 2.0 - 매드타임스(MADTimes) 참조

특히 언어 면에서 축소 지향의 성향을 고찰하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리모콘リモコン(Remote Controller)’, ‘파소콤パソコン(Personal Computer)’, ‘화미레스ファミレス(Family Restaurant)’등 영어 단어의 복합한 혼성어를 모두 축소된 형태를 보여준다. 대표적인 단어는 우리 생활에도 깊숙하게 침투해 있는 ‘가라오케’일 것이다. ‘가라오케’는 ‘비어 있다’라는 뜻을 지닌 일본어의 ‘空(カラ)’와 ‘오케스트라’를 줄인 ‘오케’를 합성한 축약어로, 음악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엔터테인먼트 기계이다. ‘가라오케’ 못지않게 잘 알려진 축약어로 ‘라지카세ラジカセ’를 들 수 있다. "라지카세"는 "라디오 카세트"의 줄임말로 라디오와 카세트 플레이어가 결합된 기기를 말한다. 보통 스피커와 함께 하나의 장치로 구성되어 있으며,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고,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거나 녹음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언어 줄이기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언어를 축소하는 경향은 일본어만이 아닌 모든 언어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긴 단어는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가능한 음절 수를 줄여서 발음할 때 조금이라도 편해지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공통적인 속성이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어느 언어에서도 볼 수 있다. 영어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자.

먼저, 두 개의 단어의 일부를 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혼성어(또는 혼합어, Portmanteau word)’가 있다. ‘브런치(Brunch - Breakfast + Lunch)’, ‘모텔(Motel - Motor + Hotel)’, ‘스모그(Smog - Smoke + Fog)’, ‘인포머셜(Infomercial - Information + Commercial)’, ‘웨비나(Webinar - Web + Seminar)’, ‘이모티콘(Emoticon - Emotion + Icon)’, ‘글램핑(Glamping - Glamorous + Camping)’, ‘팟캐스트(Podcast - iPod + Broadcast)’등이 그 예이다.

긴 단어는 의미를 바꾸지 않고 단순하게 짧게 말하는 때도 있는데, 이는 ‘클리핑(Clipping)’이라고 한다. ‘클리핑’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 ‘후방 클리핑(Back-clipping)’은 단어의 끝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다.(예. Ad – Advertisement, Gym – Gymnasium, Fax – Facsimile, Lab – Laboratory, Demo – Demonstration) ‘전방 클리핑(Fore-clipping)’은 단어의 시작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다.(예, Phone - Telephone, Plane – Airplane) ‘중간 클리핑(Middle-clipping)’은 단어의 중간 부분을 제거한다.(예, Flue – Influenza, Fridge – Refrigerator)

이 외에 영어에는 여러 단어의 첫 글자들을 조합하여 만든 ‘두문자어(Acronym)’가 있다. ‘두문자어’는 주로 인터넷, SNS, 문자 메시지 등에서 주로 사용된다.(예, LOL - Laughing Out Loud, OMG - Oh My God, BFF - Best Friends Forever, ASAP - As Soon As Possible, IDK - I Don't Know)

한글에서도 단어가 축약되는 현상은 최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혼밥(혼자 + 밥)’, ‘셀카(셀프 + 카메라)’, ‘집콕(집에 콕 박혀 있기)’, ‘인별(인스타그램)’, ‘완소(완전 소중)’, ‘간장(간단하게 장을 보다)’, ‘먹방(먹는 방송)’, ‘감성(감정과 성격)’, ‘신상(새로운 상품)’과 같이 비교적 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만반잘부(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혼코노(혼자 코인 노래방)’과 같은 최신 유행을 반영하면서 점점 더 복잡하고 의미 파악에 상상력이 있어야 하는 새로운 단어가 더해진다.

이러한 단어 축약 현상은 정보 기술의 발달과 더욱 빠르고 간결하게 소통하려는 욕구가 커짐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젊은 세대의 창의적인 표현 방식은 새로운 단어와 용어를 끊임없이 만들어낼 것으로 전망한다. 이처럼 일상 생활에서 언어의 사용이 점점 더 짧고 간결해지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일본어 언어 축약은 문화의 반영

일본어에서 사용되고 있는 축약어를 살펴보면 많은 단어가 영어 단어에서 온 것을 알 수 있다. ‘리모콘(リモコン、Remote controller)’, ‘화미레스(ファミレス、Family restaurant)’, ‘시네콤(シネコン、Cinema complex)’, ‘파소콤(パソコン、Personal computer)’, ‘화미콤(ファミコン、Family console)’, ‘에어컨(エアコン、Air conditioner)’, ‘와프로(ワープロWord processor)’, ‘메아도(メアド、Mail address)’, ‘라지카세(ラジカセ、Radio Cassette)’, ‘가라오케(カラオケ、Kara Orchestra)’, ‘제네콤(ゼネコン、General Contractor)’, ‘보디콤(ボディコン、Body Conscious)’, ‘데파토(デパート、Department store)’, ‘콤비니(コンビニ、Convenience store)’등 다양하며 이 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도 있다. 일본어 사전에도 정식으로 등록되어있는 속어나 구어가 아닌 현지화 된 외래어이다.

이외에는 카레 음식점으로 유명한 ‘코코이치방야(Coco Inchibanya)’는 ‘코코이치’로 ‘미스터 도너츠(Mister Donuts)’는 ‘미수도(Misudo)’로 ‘스타벅스(Starbucks)’는 ‘스타바(Sutaba)’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으로 브랜드 이름이 축약되는 케이스도 종종 볼 수 있다.

일본의 축약어에는 문화적 측면이 있다. 외래어를 받아들여 독자적으로 변형하는 문화가 있으며, 이는 새로운 단어의 창조로 이어진다. 특히, 전후 고도 경제 성장기 이후 외래어가 일본에 많이 도입되었고, 그중 많은 단어가 약어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외래어의 축약어는 일본의 언어생활에 깊숙하게 침투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외래어에 기원한 새로운 조어 그리고 복합어의 단축으로 인해 효율적이면서 다양한 외래어의 약어가 일본어의 전달 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라오케’ vs. ‘라지카세’

이 많은 축약어 중에 넘버원을 꼽으라면 무엇일까? ‘가라오케’와 ‘라지카세’ 둘 사이에서 갈등이 생긴다. 굳이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하자면 개인적으로 ‘라지카세’를 선택하겠다. 라디오와 카세트의 합성어인 ‘라지카세’는 영어로는 ‘붐박스(Boombox)’ 또는 ‘포터블 스테레오(portable stereo)’, ‘포터블 카세트 플레이어(portable cassette player)’라고도 한다. ‘라지카세’는 60년대 일본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는 "라디오가 달린 테이프 레코더" 또는 ‘라디오가 달린 카세트 레코더"라는 긴 이름으로 판매가 되었고 "라지카세"라는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1967에는 파나소닉(Panasonic)이 세계 최초로 ‘라지카세’를 출시한 이래로, 1968년 아이와(Aiwa), 1970년에는 소니(Sony) 이어서 JVC, Mitsubishi, Sanyo, Sharp 등 일본 대부분의 가전 업체가 줄줄이 시장 진출을 한다. 그 이후 일본 가전 회사의 비즈니스 전략과 잘 맞으면서 제품 개발과 마케팅 활동을 적극 전개하였고, 수많은 변신을 거쳐 가는 과정에서 장수하는 제품이 되었다.

1970년 발매된 소니의 ‘라지카세’ CFM-8120
1970년 발매된 소니의 ‘라지카세’ CFM-8120

80년도에는 미국의 브레이크 댄스, 힙합 등의 인기 상승에 따른 ‘휴대형 라지카세(Boombox)’의 유행에 편승하여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였다. 하지만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이라는 상징적 존재였기 때문에, 미국과 일본 간의 무역 마찰이 두드러졌을 때,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일본산 ‘라지카세’를 망치로 파손하는 퍼포먼스를 보이는 등 수난의 시기를 겪는다.

‘라지카세’ 고난의 시대, 미의회 앞에서 일본산 ‘라지카세’를 부수는 미국 공화당 의원들, 1987
‘라지카세’ 고난의 시대, 미의회 앞에서 일본산 ‘라지카세’를 부수는 미국 공화당 의원들, 1987

80년대 후반에는 ‘CD라지카세’, ‘MD라지카세’가 붐을 일으켰고 2000년대 후반에는 카세트 대신에 SD카드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라지카세’가 등장하면서 그 붐을 이어갔다. 2010년대에는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음악을 즐기고자 할 때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특히 고음질을 중시할 때는 고해상도(Hi-Resolution)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로 듣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라지카세’의 판매 대수가 급감, 많은 제조사가 ‘라지카세’ 시장에서 철수하는 절멸의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2010년도 후반 레트로 붐의 등장으로 다시 부활한다. ‘라지카세’가 가지는 음악의 따뜻함이 많은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외관이 "레트로하고 멋있어 보인다"라는 패션적 요소까지 가미되었다. 특히 형체가 있는 물건을 통해서 음악을 감상하는 젊은이가 늘어나고 있다. 거의 사라졌다고 여겨졌던 카세트 테이프가 2010년대 후반부터 레트로붐으로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하면서 조용한 부활을 경험하고 있다. 2020년대의 가전 매장의 ‘라지카세’ 코너는 이전에 비해 규모가 많이 작아졌다. 생산하는 메이커와 생산 모델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방재용 라지카세’, ‘레트로 라지카세’, ‘모노 라지카세’ 등 다양한 종류의 ‘라지카세’가 매장에 다시 등장하고 있다. 시장 자체는 축소되었지만 그 존재감은 지속해서 남아 있다. 이처럼 ‘라지카세’는 장수 제품으로 정착하면서 마케팅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축약어가 되었다.

신제품이 시장에 나와서 장기적으로 소비자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는 여러 요인이 종합적으로 작용한다. 이 중에서도 네이밍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라지카세’의 장수의 비결에는 축약된 네이밍의 매력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이름 하나 잘 지어서 대박을 만들어 내는 제품이 여기저기 있다. 네이밍을 마케팅과 비즈니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라지카세’가 장수하는 것을 보면서 네이밍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Trend from Tokyo] 이름만 바꾸었는데 - 매드타임스(MADTimes) 참조

 


양경렬 나고야 상과대학 (Nagoya University of Commerce and Business)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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