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에 말걸기] 뚜껑만 보면 따고 싶어!

[광고에 말걸기] 뚜껑만 보면 따고 싶어!

  • 이현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1.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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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뚜껑 열릴 만큼 화나는 일이 종종 생기게 마련이다. 머리에 김이 모락모락 나도록 뻗치는 열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묘안 하나! 잘 냉장된 맥주 한 잔을 목젖이 얼얼하도록 단숨에 들이켜는 것이다. 이런저런 우울한 일상을 잊어버리기 딱 좋을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리즈로 펼쳐지는 맥주 광고가 있다. ​

​하이네켄 광고 캠페인

네덜란드의 대표 맥주 하이네켄(Heineken)의 광고다. 뛰어난 유머감각을 지닌 주당이라면 이 광고를 빙자해서 오늘 저녁 시원한 맥주 한 잔 청해도 좋겠다. 때마침 이 하이네켄 광고에는 병따개가 즐비하니 그냥 입만 가져오시면 될 일. 자, 지금부터 객기 넘치는 병따개들이 차례차례 펼치는 유머 광고의 진수를 지긋이 음미하도록 하자.

비디오카페 맥주집인가? 금박으로 치장된 스크린 안에는 시즐 감 넘치는 맥주병이 섹시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객석에서 꼴깍꼴깍 침을 삼키면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병따개들. 얼핏 보기에는 쇼윈도에 전시된 마네킹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더 이상의 엉뚱한 상상은 자제하기로 하자.

이 구실 저 구실 동원해가며 술 먹을 건수를 만들어 내는 주당들의 심리가 이런 거 아닐까? 으슥한 밤거리 뒷골목에서 병따개 하나가 하이네켄 맥주를 노리고 있다. 걸리기만 하면 냉큼 따 버릴 태세를 하고서. 거기에 슬로건이 범행 동기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이네켄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It could only be Heineken)’.

피해자인 하이네켄이 거품을 입에 물고 나뒹굴고 있다. 병따개 녀석, 마무리하는 솜씨를 보아하니 역시 지능범은 아닌 것 같다. 초범들이 늘 그렇듯이 범행 현장에 재차 나타나서 확인하는 초조함까지 보이는 걸 보니 더더욱 그렇다. 포토라인 뒤에서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는 병따개들 뒤에 숨어서 엿보는 것까지 쏙 빼닮았다.

여기는 취조실. 상당히 삭막한 실내 분위기이지만 범행 용의자를 가려내는 코믹한 풍경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 동네 저 동네에서 잡혀온 고만고만한 병따개들이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다. DNA 감식, 혈흔 체취, 거짓말 탐지기, 고문 등 범인을 판별하는 방법에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촌스럽게 키를 재보는 방법을 고집하고 있다.

‘Call me!’라는 문어발 광고에다 전화번호를 남겨놓은 것까지 어디선가 많이 본 풍경이다. 그 앞에서 침을 꼴깍거리며 기웃대는 병따개 하나. 아무리 병따개를 시켜서 못할 짓을 시켜 놓았지만 어째 노는 모양새가 그 동네나 이 동네나 한 통속인 것 같다. 이런 끈적끈적한 표현이 판매로까지 연결될 수 있을까? 술 광고의 마케팅 효과는 뚜껑을 따기 전에는 모를 일이다.

​통쾌한 발상, 유쾌한 감상

맥주는 광고의 아이디어 경연장에서 언제나 따끈따끈한 이슈로 등장한다. 시대의 트렌드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그 풍성한 거품 속에 녹아 있다. 맥주 광고의 치열한 공방전은 대체로 버드와이저, 밀러, 쿠어스, 미켈럽, 부시, 브루클린 등으로 대표되는 미국 시장과 하이네켄, 파울라너, 벡스, 필스너, 칼스버그, 기네스, 스텔라 아르투아 등을 떠올리는 유럽 메이커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들 맥주의 메이저 브랜드들은 해마다 열리는 국제 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다투면서 크리에이티브의 농도를 더해 간다. 특히 네덜란드산 하이네켄 광고를 눈요기하는 것은 맥주 광고가 어디까지 감칠맛을 낼 수 있는지, 광고인들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가늠하는 재미를 더 해준다. 발상의 통쾌함에 짜릿함이 온몸을 타고 휘감는다. 머리를 쥐어짜는 고민이라든가 억지로 짜 맞춘 어색함 같은 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바퀴만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고 읊조린 어느 시인의 너스레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마찬가지로 이 광고를 만든 이들도 이렇게 낄낄대며 머리들을 굴렸을 게 틀림없다.

​‘우리 집 냉장고 큰 걸로 바꾸고 나서 맥주 값이 장난 아니게 들어가.’

‘아, 술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쯤은 각오해야지.’

‘난 냉장고 문짝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병따개만 봐도 미치도록 맥주가 당겨.’

‘그래도 맥주병만 보면 따먹고 싶은 건 주당들의 본능 아닌가?’

아무리 그렇게 봐 주더라도 ‘따 먹는다’는 말엔 묘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뭔가 음흉스럽고 불량기가 묻어있고 성희롱 같은 엉큼한 냄새까지 느껴진다.

​‘그래, 섣불리 표현했다간 호색한으로 몰리기 딱 십상이고.’

‘아직도 술 광고하면서 그따위 질펀한 성적 코드로 뭉개자는 거야?’

‘도대체 싸구려 선술집에 붙어있는 야릇한 색깔의 포스터와 뭐가 다르겠어?’

‘그럼, 그런 얘기를 딴 녀석이 대신하게 하면 어떨까?’

‘동물이 나오는 것도 너무 상투적이고… 옳아, 수가 있다! 병따개 녀석에게 악역을 맡겨 버리는 거야.’

‘병따개라… 그래, 녀석 생긴 꼬락서니만 봐도 능히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물건이야.’

​이렇게 해서 숙성 발효된 하이네켄 광고는 그래서 날렵하다. 한마디로 경쾌한 크리에이티브이다. 스피드 시대를 실감나게 하는 기민한 재치가 작품마다 번득인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손만 대면 모든 게 뻥뻥 따지는 원터치 세상, 클릭만 하면 찾는 게 딱딱 나타나는 원스톱 사이버 시스템, 저절로 숨이 가빠지는 인스턴트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 편 한 편, 고정관념의 정곡을 찌르는 맛이 도저하다.

파격의 크리에이티브, 착실한 성장사​

하지만 맥주 광고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아이디어와 아트 워크는 맥주의 명가 하이네켄 집안이 걸어온 착실한 성장의 발자취에 견주어보면 너무나 파격이다.

하이네켄의 기원은 1592년으로 거슬러 잡아야 한다. 바인트겐 엘버츠(Weijntgen Elberts)라는 미망인이 암스테르담 도심에 하이스택 양조장(Haystack brewery)을 세웠고, 1864년 약관 22살의 제라드 아드리안 하이네켄(Gerard Adriaan Heineken)이 지역 최고 규모였던 하이스택 양조장을 인수하면서 하이네켄 집안을 맥주의 본가로 자리하게 만든다.

창업자 Adriaan Heineken과 초창기 제품
창업자 Adriaan Heineken과 초창기 제품

그가 전통적인 양조법을 버리고 품질과 청결, 제조공법 등을 완전히 혁신하면서 하이네켄은 노동자의 술에서 신사의 맥주로 탈바꿈한다. ‘A 이스트(A-YEAST)’라는 효모를 개발한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그러나 1870년대 들어 맥주시장은 치열한 경쟁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이네켄 가는 저급주의 생산을 중단하고 로테르담에 3천 제곱미터에 이르는 대규모 공장을 건립하면서 고급주의 본격 생산체제를 갖추게 된다.

소비자의 입맛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철학을 가졌던 하이네켄 사장은 과장 광고를 단호히 거부하고 오로지 품질로 세계시장을 돌파한다.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로 수출하는 최대의 맥주 브랜드로 성장하면서 국제박람회에서 금메달의 영예와 함께 에펠탑 내 레스토랑의 공식 맥주로 지정받기도 한다. 1893년 제라드 아드리안 하이네켄 사후 제라드 하이네켄(Gerard Heineken)과 빌헬름 펠트만(Wilhelm Feltmann)의 20년 공동 경영 하에서 하이네켄은 본격적인 대규모 맥주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하이네켄의 본격적인 성장, 그 주역은 창업자의 손자인 알프레드 하이네켄(Alfred Henry Heineken)이었다. 19세 때인 1942년, 그는 하이네켄의 홍보직원으로 입사하여 미국의 아메리칸라인 항공을 본 따 광고 캠페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녹색 병과 빨간 별의 로고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의 일이다. 알프레드는 자신의 이름 앞에 ‘맥주왕’이라는 칭호를 붙이면서 하이네켄을 세계 최고의 프리미엄 맥주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시대를 뛰어넘는 브랜드 유산 ​

​오늘날 하이네켄은 글로벌 맥주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며, 190개 이상의 국가에서 판매되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알프레드 하이네켄이 녹색 병과 빨간 별을 통해 구축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시대를 넘어 여전히 강렬한 시각적 임팩트를 선사하며, 고유의 유머러스하고 세련된 광고 크리에이티브를 통해 소비자와의 교감을 이어가고 있다.

하이네켄 광고는 단순히 맥주를 마시는 장면에 머무르지 않고, 병을 여는 순간의 짜릿함과 이를 둘러싼 일상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Open Your World" 캠페인은 맥주 한 병이 단순한 음료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도구임을 이야기한다.

하이네켄 광고는 또한 항상 유머러스한 상황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컨대, "The Switch" 캠페인에서는 평범한 바를 고급스러운 펍으로 변신시키는 장면을 통해 하이네켄이 평범한 일상에 특별함을 더한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유머는 브랜드의 긍정적이고 활기찬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다.

​최근 하이네켄 광고는 현대 사회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Cheers to All" 캠페인은 성별에 따른 음료 선택의 고정관념을 깨며, 맥주가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음료임을 재치 있게 보여주었다.  

하이네켄은 아티스트, 영화 제작자, 패션 디자이너 등과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 한정판 병 디자인 캠페인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하이네켄 병 자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끼게 했다.

하이네켄은 단순한 소비를 넘어 책임 있는 음주 문화를 독려하기 위해서도 노력해왔다. 특히 "When You Drive, Never Drink" 시리즈는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과 음악을 결합해 음주 운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동시에 하이네켄의 책임감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

​스포츠와의 협업 ​

​하이네켄은 UEFA 챔피언스리그와 같은 글로벌 스포츠 이벤트의 공식 후원사로, 축구 팬들을 겨냥한 독특한 캠페인을 다수 선보였다. ‘The Match’ 광고는 축구팬과 하이네켄이 함께 만드는 열정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하이네켄 광고는 단순히 맥주를 홍보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브랜드와 소비자가 감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스토리를 창조한다. 또한 소비자의 유머 감각을 존중하고 책임감을 강조한다. 새로운 경험을 제안함으로써 전통과 현대성을 모두 아우르는 브랜드 가치를 보여준다.

​하이네켄의 광고 캠페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크리에이티브 교과서다. 재치 넘치는 병따개 캐릭터부터,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진화하는 스토리텔링은 맥주 한 병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한다. 어떤 기발한 발상으로 세계를 들뜨게 만들어 갈지 기대된다.

​하이네켄 광고는 맥주를 넘어, 일상을 새롭게 열어주는 하나의 창이다. 유쾌한 상상력과 명쾌한 메시지가 그 증거다. 맥주 그 이상의 브랜드가 소비자와 어떻게 교감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현우 전직 카피라이터 / 동의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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