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드타임스 하인즈 베커 칼럼니스트] 회의실.
프로젝터가 켜지고, 첫 장 슬라이드가 올라간다. “이번 캠페인의 메인 슬로건은요…” 아니, 잠깐만. 슬로건이 ‘첫 문장’으로 나오는 순간, 이 피칭은 이미 졌다. 의사 결정자에게 프레젠테이션은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것이다. 실무자는 기획서를 본다. 하지만 결정권자는 말을 듣는다.
광고는 결국, 말의 싸움이다.기획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기획을 ‘들리게’ 만드는 것. 그게 수주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왜냐고? 슬라이드는 고객의 눈앞에 있지만, 결정은 그들의 뇌와 심장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슬로건이 아니다. “이 회사는 우리 브랜드를 이해하고 있다.”는 감정이다.그리고 그 감정은— 기획이 아니라 말로 만들어진다. 말은 감정의 언어다. 슬라이드 위에 써놓은 ‘페르소나’보다,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 중 가장 외로운 시간에도 우리 앱을 열어요.” 라는 한 줄 말이 훨씬 강력하다. 그건 기획을 들리게 만든 말이다.
내가 만난 글로벌 기업 마케팅 본부의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고객은 데이터를 안 봐요. 고객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렇다. 슬라이드가 아무리 정교해도, 말 한마디에 못 미친다. “우리 브랜드는 더 따뜻해지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슬라이드 위에서 죽어간다면, “그래서 이 브랜드는 자정 이후에도 고객의 삶을 지켜보겠다고 합니다.”라고 말하라. 기획이 전달되는 건 그 한 문장 덕분이다.
지금 광고판은 말이 없다. 다들 ‘보여주려고만’ 한다. 비쥬얼과 데이터에 중독된 채, 핵심을 말하지 않는다.
수주는, 말할 수 있는 자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기획을 입에 물고 살아야 한다. “왜 이렇게 했는지?” “왜 이거면 안 되는지?” 밤새 슬라이드만 만지는 게 아니라, 말로 기획을 구성하고, 말로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말로 설득하고, 말로 감동시키고, 말로 수주하라.
기획은 눈에 안 보인다. 하지만 말은 남는다. 회의가 끝난 후, 광고주의 귀에 남는 건 슬라이드가 아니라 프리젠터의 마지막 말이다. “이건, 브랜드가 말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작업입니다.”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면, 수주는 따놓은 당상이다. 그러기 위해 제안서의 가장 중요한 페이지는 첫 장이 아니라, 마지막 서머리다.
그래서 나는 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이제까지 이 회사가 해온 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이건 이제, 말을 바꾸는 싸움입니다.” 말해야 듣고, 들려야 읽는다. 읽어야 계약한다. 내 기획이 들리는 순간, 브랜드는 드디어 내 앞에서 눈 뜨기 시작한다.
하인즈 베커 Heinz Becker
30년 가까이 전 세계 광고회사를 떠돌며 Copy Writer, Creative Director, ECD, CCO로 살았다. 지휘한 캠페인 수백개, 성공한 캠페인 수십개, 쓴 책 3권, 영화가 된 책이 하나 있다. 2024년 자발적 은퇴 후, 브런치와 Medium에 한글과 영어로 다양한 글을 쓰면서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Cosmopolitan. Writer. Advertising Creative Director. Created hundreds of advertising campaigns and written three books. One of them was made into a 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