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드타임스 하인즈 베커 칼럼니스트] 광고를 오래 하다 보면, 본질보다 재주가 앞서는 순간이 온다. 유행과 매체의 속도는 빨라지고, 기획서는 화려해지며, 말은 정교해지고, 디자인은 눈부셔진다. 그런데 그럴수록 더 자주 묻게 된다. “우리가 팔고 있는 건 정말 괜찮은 물건인가?” 문장도, 컬러도, 톤 앤 매너도 잘 빠졌는데, 정작 본질은 비어 있는 경우. 많이 겪는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다. 이 일을 계속하려면, 최소한의 정직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그 정직함은 완벽하다는 말이 아니다. 광고하는 모든 제품이 윤리적으로 완성되어 있길 기대하진 않는다. 다만, 최소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회의실에서 그 제품의 이름을 말할 때, 얼굴을 찌푸리지 않아도 되는 정도. 자기 기획서를 읽을 때,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지 않아도 되는 정도. 그게 ‘정직한 무엇’의 기준이다. 이건 브랜드 철학이 아니라, 크리에이티브를 지탱하는 최소 단위다.
나는 관계란 '배움과 나눔'이라는 단어의 결합이라고 생각한다. 이 결합이 매끄럽지 않으면 이상한 관계가 된다. 그리고 그런 매끄럽지 못한 관계망을 가진 사람이 광고를 만들면 이상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왜냐면 광고는 결국 사람의 말을 대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통이 만든 말은, 아무리 멋져도 사람을 설득하지 못한다. 브랜드의 말도, 카피의 문장도, 디자이너의 색도, AE의 어투도, 최소한의 진심을 전제로 해야 한다. 광고는 결국 사람의 가슴에 닿아야 하는데, 거기엔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 전략이 아니라 양심이 남는다. 말하자면, 정직함은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설득의 조건이다.
나는 '회사후소 (繪事後素)'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바탕을 완전하게 만든 이후에 재주를 피우라는 말이다. 이건 일도, 연애도 마찬가지다. 정직하지 않은 말은, 오래 못 간다. 시장이 잊기 전에, 우리 자신이 먼저 싫증 낸다. 광고는 남의 물건 대신 파는 일이지만, 나와 소비자의 정직한 관계 맺기 이기도 한 것이다. 소비자는 우리보다도 변덕이 심한 상대다. 그러므로 이 관계 맺기가 실패했을 때, 브랜드보다 더 먼저 외면받는 것은 우리가 된다.
하인즈 베커 Heinz Becker
30년 가까이 전 세계 광고회사를 떠돌며 Copy Writer, Creative Director, ECD, CCO로 살았다. 지휘한 캠페인 수백개, 성공한 캠페인 수십개, 쓴 책 3권, 영화가 된 책이 하나 있다. 2024년 자발적 은퇴 후, 브런치와 Medium에 한글과 영어로 다양한 글을 쓰면서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가끔은 강의와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