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크리에이티브] AI로 성차별적 이름을 지운다… 럭스·VML ‘Reclaim Her Name’ 프로젝트

[해외 크리에이티브] AI로 성차별적 이름을 지운다… 럭스·VML ‘Reclaim Her Name’ 프로젝트

  • 최영호 기자
  • 승인 2025.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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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최영호 기자] 중국 문화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름은 곧 정체성이자 운명이며, 가족의 기대와 바람이 담긴 중요한 상징이다. 그래서 중국 부모들은 자녀에게 이름을 지을 때 한 글자 한 글자에 의미를 담아 정성을 기울인다.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중국 여성들이 시대에 뒤처진, 그리고 성차별적인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다.

‘조남(赵弟, 남자아이였으면 좋겠다는 뜻)’, ‘아남(亚男, 남자보다 아래)’, ‘생남(生男, 아들을 낳게 해달라)’ 같은 이름들이 실제로 지금도 흔히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름은 여성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평생을 따라다니며 ‘너는 남자보다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게 만든다. 이는 단지 언어적 문제를 넘어서, 여성의 자존감과 사회적 역할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배경에서 글로벌 뷰티 브랜드 럭스(LUX)는 여성들이 기존의 성차별적인 이름에서 벗어나 스스로 새로운 이름을 선택하고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캠페인, ‘Reclaim Her Name’을 론칭했다. 이름을 다시 짓는 이 캠페인은 단순히 인식 개선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설계됐다. 중국 여성들이 모바일 기기에서 자신의 기존 이름을 입력하고 휴대폰을 흔들기만 하면, AI 기반 알고리즘이 작동해 이름의 한자 구성, 의미, 소리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현대적이고 긍정적인 새로운 이름을 제안한다.

만약 제안된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시 흔들면 된다. 그렇게 여성들은 반복적인 생성 과정을 통해 스스로에게 진정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 도구는 위챗(WeChat), 웨이보(Weibo), 레드노트(Rednote) 등 중국의 대표적인 모바일 플랫폼에서 손쉽게 접근 가능하다.

이 캠페인은 단지 기술적 재미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프로젝트는 중국 송나라 시대 여성들이 남성 중심 사회의 억압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언어를 만들고 감정을 나누었던 비밀 문자 ‘여서(女书, Nu Shu)’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되었다. 남성들이 이해할 수 없도록 여성들끼리만 쓰던 이 언어는, 오랜 세월 여성들 간의 연대와 위로의 수단으로 계승되어 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럭스와 VML 싱가포르는 여서의 유려한 필체를 바탕으로 ‘뉴 우먼스 폰트(New Women’s Font)’라는 새로운 서체도 함께 개발했다. 이 서체는 Reclaim Her Name 캠페인에서 생성된 각 이름에 적용되어, 이름 선택 자체가 여성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캠페인을 총괄한 VML 싱가포르 관계자는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이름을 되찾는 일이 곧 정체성과 존엄성을 되찾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럭스 브랜드 관계자 역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우리 삶의 이야기와 미래를 담는 상징”이라며 “여성들이 과거의 편견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이름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Reclaim Her Name은 단순한 이름 바꾸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캠페인은 여성들이 자신을 다시 정의하고, 사회 속에서 주체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돕는 실천적 메시지이자, 언어와 디자인, 기술이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형태의 연대다. 이름을 바꾸는 작은 움직임이 세상을 바꾸는 큰 물결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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