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고회사 A는 최근 유명 패션 브랜드와 대형 캠페인을 수주하며 톱 모델 L과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오랜만의 빅 프로젝트에 내부 분위기는 들떴지만, 견적 작업이 시작되자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모델 L 측의 요구였다. “저는 늘 함께하는 팀이 있어요. 이번에도 제가 지정한 메이크업, 헤어, 스타일리스트와만 작업해야 해요.”
처음엔 낯설지 않았다. 유명 모델일수록 본인을 가장 잘 아는 팀과 함께하려는 경우는 많으니까. 하지만 막상 받아본 견적은 문제였다. 해당 스태프들의 비용이 시장 시세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통상 단가의 3~5배)이었던 것이다. 사실상 비용과 조건 모두 모델 계약과 세트처럼 고정된 구조였다.
광고회사 A는 딜레마에 빠졌다.
- 이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모델 계약이 무산될 수 있다.
- 하지만 광고주에 그대로 청구하기엔 내부 정산 기준이나 회계상 부담이 크다.
- 그리고 마음속 질문. “이게 업계 관행인가, 아니면 명백한 갑질인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나
광고 현장에서 모델이 스태프를 지정하는 건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요구가 사실상 강제처럼 작동하고, 비용 역시 정당한 수준을 넘어서며, 다른 인력을 쓸 수 있는 여지를 원천 차단하는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면,그건 더 이상 ‘협업의 편의’로 포장될 수 없다.
스태프를 넘어 ‘감독 고정’까지 요구하는 일도 이미 오래전부터 업계에 만연해 있다. “이 감독님이 제 모습을 제일 잘 담아줘요. 제일 예쁘게, 제일 멋있게 찍어줘요. 저는 이 감독님 아니면 안 찍어요.”
이쯤 되면 광고 제작은 더 이상 브랜드를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특정 모델 개인의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사적 무대가 되어버린다.
문제는 이 구조가 너무 오래 묵인돼 왔다는 점이다. 그저 “원래 다 그래”라고 넘기고, “일을 진행하려면 어쩔 수 없어”라는 이유로 타협하며, 누구도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톱 모델의 고정 스태프와 감독 요구는 ‘협의 가능한 조건’이 아니라 ‘비용과 계약의 전제 조건’으로 굳어졌다.
지금은 달라야 한다
호황일 때는 이런 문제도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광고주도, 광고회사도, 프로덕션도 모두 불황의 늪에 빠져 있는 지금, 이 구조를 방치한다면 결국 업계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이건 단지 한 모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모두 공모했고, 방조했고, 외면해온 업계 구조의 결과다.
그리고 모델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이처럼 협업을 사유화하는 방식이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AI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가장 먼저 대체될 것이다. 지금은 브랜드와 함께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지, 자신만을 위한 룰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피하지 말고 풀어야 할 때다.
이제는 말하자. 이 구조가 정당한가? 정말 이대로 괜찮은가? 묵인과 타협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우리 모두 이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이제부터 풀어야 한다.